한국의 전통문화 신라 건국신화 의례 신라건국신화 건국신화이해전제 한국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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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전통문화 신라 건국신화 의례 신라건국신화 건국신화이해전제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머리말 - 건국신화 이해의 전제
신화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서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이야기이며 따라서 현재 행위의 모범으로 삼고 따라야할 이야기 이다. 신화는 사회적 경험의 객관화이며 집단적인 또는 공동체적인 생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해당 신화를 영위하는 집단의 전통성을 제시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신화는 정형성을 갖춘 의례를 통해 상기됨으로서 그 생명력을 발휘한다.
고대의 국가는 대개 자시의 기원을 설명하는 건국신화를 통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신라 역시 마찬가지 이다. 건국신화는 건국의 주체세력이 건국의 기원을 설명하고 지배행위를 정당화 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신화보다도 역사성과 정치성을 농후하게 가지고 있으며 대개 한국의 건국 신화도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목적 의식을 밝혀낸다는 의도에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건국신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끌어내는 작업은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신화가 역사적 경험에 대한 집단 기억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단 기억은 ‘비역사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승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 신화의 내용이 그대로 역사라고 할수 없다. 실제 신화들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부분들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점 또한 많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신화라고 해도 신화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은 역사적 사실에서 추론될수 있는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건국신화를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해석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키는 것은 위험한 태도이다. 신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추출하는것은 이러한 기본인식을 토대로 해당 신화를 창출한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태도을 이해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화에서 추출할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실제로 있었던 어떤 일이라기 보다는 그 일에 대한 집단적 기억과 해석이 흔적이라는 점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2. 건국신화와 왕권에 대한 관념
신라의 건국신화는 신라라는 나라가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를 시조왕의 탄생과 즉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의 건국 신화는 나라의 근본을 설명하는 가운데 왕권의 기원과 성격을 설명하는 왕권신화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건국신화에서 시조왕을 어떠한 존재로 표현했는가를 살펴보면 그 신화를 창출하고 전승하던 신라인들의 왕권에 대한 관념을 알 수 있다.
박 혁거세는 불구내왕 이라고도 하였다. 불구내왕이 광명현세를 의미한다는 설명이나 그가 하늘의 빛이라든지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돌아간 백마를 매개로 세상에 드러난 알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박혁거세는 광명적 존재이자 그 광명으로 표현된 천신적 존재로 믿어진 신화적 시조로서의 성격을 가졌음을 짐작할수 있다.
또한 박혁거세는 스스로 알지거서간이라고 말했다는 전승을 가지고 있다. 알지란 곡령적 존재를 찬양하는 호칭이라는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전승은 시조왕 혁거세가 신라 사회의 농업 생산의 풍요를 책임지는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혁거세는 죽어서 승천하였는데 7일후 그 유체가 땅으로 떨어져서 합쳐서 장사하려 하였지만 큰 뱀이 이를 막았기 때문에 각기 장사지냈다고 한다. 신이나 영웅, 왕들의 유해가 절단되어 각기 다른 장소에 매장되었다는 신화는 왕이나 주술사의 육체를 절단하여서 대지의 풍요와 또 인간이나 가축의 다산을 보증하기 위해서 국내외 여러 지방에 그 단편을 매장했던 관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혁거세의 비상한 죽음에는 그의 농업신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신라의 건국신화는 박씨 시조신화이기도 하다. 신라에는 왕을 내었던 성씨가 세 집단이 있었고 이들은 각기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신라인들의 역사 인식에서 나라의 시작은 박혁거세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왕으로서 박씨 왕실의 시조이자 나아가 신라지역 전체의 관념적 시조신으로 여겨진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조왕의 특별한 지위는 시조에 내포된 시원의 신비성과 그로 인한 영속성의 보장이라는 특별한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박혁거세는 박씨의 시조로서 어떤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특정 인격을 가지고 출발했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시조왕으로서 자리하고 그것이 건국신화로서 전승되면서 그는 역사적 인물이 아닌 신화적 인물로 관념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