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을 활용한 도덕 수업 - 아리스토텔레스 중용 가운데 용기 - 개미도 노래를 부른다 - 2 내 힘으로
1. 덕목 :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가운데 ‘용기’
■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으로서의 행복을 완전한 덕에 따르는 마음의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덕을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으로 구분한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기며,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발생하거나 성장한다.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도덕적인 덕에 대해 논한다.
감정은 매우 넓은 행동의 영역을 갖기 때문에, 인간은 과다와 과소의 조화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적절한 중용을 발견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설하였다. 덕은 우리의 다양한 감정들과 행동들에 관련되는데, 왜냐하면 그 감정들 속에 과다함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공포, 자만, 색욕, 갈망, 연민, 쾌락, 고통과 같은 감정을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느낄 수 있으며 이 두 경우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느껴야 할 때 우리는 중용을 취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밝혔다. 이는 인간에게 있어 최상의 상태이며, 이러한 상태는 곧 덕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따라서 악덕은 과다나 과소의 극단이며 덕은 그것의 중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들이 통제되고 행동들이 인도되는 것은 영혼의 이성적인 힘을 통해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덕은 결국 중용을 그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모든 행위와 모든 정념에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악의, 질투, 절도, 살인 같은 경우에는 그 중용이란 도무지 없으며,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요컨대 언제나 그릇된 것이다. 이에 비해서 절제와 용기는 그 극단적인 것이 중간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과도와 부족이 도무지 없다. 요컨대 절제와 용기는 그 자체가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과 중용에 대한 위와 같은 일반적인 언급을 개별적인 사실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위란 어디까지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우에 관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몇몇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명예와 불명예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긍지요, 그 과도는 이른바 허영이요, 그 부족은 비굴이다. 노여움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온화요, 그 과도는 성급함이며, 그 부족은 성질 없음이다. 진리의 중용은 진실이요, 그 과도는 허풍이며, 그 부족은 거짓 겸손이다. 돈을 주고받는 일에서 중용은 너그러움이며, 그 부족은 인색함이고 그 과도는 방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용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뜻하지 않은 우연이나 일시적 충동에 의해 중용에 맞게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성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젖은 행동의 습관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시적, 우연적으로 중용에 맞게 행동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항구적일 수 없다. 시종일관 중용에 맞는 행동, 즉 유덕한 행동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는 덕의 습관, 중용의 습관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인격이란 오랜 세월에 걸친 일관된 도덕적 훈련과 그로 인한 습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인격자란 모든 행동에서 자신이 형성한 중용의 습관에 맞추어 신뢰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하나의 행위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가 전 생활의 모든 행동에서 중용을 지키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유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하루의 실천만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 용기
- 용기에 대한 중용의 발휘는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감이 용기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주저 없이 뒤로 물러섬이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용기의 덕은 두 가지의 악덕, 즉 공포(과소)와 만용(과다)의 중용이다. 그러므로 덕의 상태는 “심사숙고에 의한 선택을 실행하는 상태이며, 상대적인 중용에 머무는 상태이고 이성에 의해 결정되는 상태이며, 실천적이며 지혜로운 인간이 결정하는 상태이다.”
2.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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