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전 연구 소크라테스의 변명
Ⅰ.서론
소크라테스(B. C 470?-399)는 아테네 출생으로 부친은 조각가요, 모친은 산파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 많은 소피스트들이 아테네를 휩쓸며 입으로는 진리를 논하면서, 공리공론을 일삼아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개탄하여, 몸소 거리나 시장에 나서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려고 하였다. 그는 특히 변설(辯舌)에만 능할 뿐 아무 취할 점도 없는 소피스트들에 반대하여, 그의 독특한 문답식 대화로써, 상대방의 오류와 모순을 드러내어, 그 무지를 스스로 깨닫도록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전후 30년 동안이나 국민들에게 지향할 하나의 지표를 지시하고, 도덕적인 혁신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며, 특히 당시의 청년들에게는 많은 감화를 주었다.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은 당시의 소피스트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소크라테스를 ‘국가의 신을 신봉하지 않고 청년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는 죄목으로 당국에 고소하였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태연히 독배를 마심으로써 70세의 생애를 마쳤다.
많은 성현들이 그렇듯이, 소크라테스는 직접 글을 써서 세상에 남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문헌으로는 당시의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의 극시과, 그리스의 역사가이며 명장인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의 사후에 쓴 한 권의 , 그리고 플라톤의 셋이 남아 있다.
플라톤은 이 에서 소크라테스를 주요한 설화자로 내세워 소크라테스가 평소에 한 말, 또는 미처 다 하지 못한 말, 나아가서는 소크라테스 자신은 의식하고 있지 않았으나 플라톤이 그의 이야기에서 마음의 경로를 더듬어 스스로 도달한 결론까지도 이야기하게 하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그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진리와 지혜는 학문으로서는 얻을 수 없으며, 적극적인 덕행 속에서 스스로 체득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지덕합일의 경지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하며 그는 선에 대한 확신으로 진리의 절대성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내용은 아고라의 한 법정에서 제도적 절차에 따른 원고 쪽의 진술이 막 끝난 시점에서 소크라테스 자신이 하게 되는 자기 변론에서 시작하여, 그에 대한 사형 판결이 난 다음에 하게 되는 그의 최후 진술로 끝을 맺고 있다. 그 사이의 변명은 배심단의 유죄평결에 이은 고소인 쪽의 수형에 따른 진술이 있은 뒤에, 소크라테스가 피고로서 유죄 평결을 이미 받은 터에, 그나마 자기에게 맞는다고 생각되는 형벌을 제의하면서 하게 되는 진술이다.
우리가 갖게 되는 의문은 소크라테스가 왜 그런 식으로 변론을 했으며, 판결은 왜 그렇게 났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하도록 투표한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된 것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언설이 달려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기로서는 평소의 자기답지 않은 짓을 하며 변론을 함으로써 무죄 방면이 되어 사느니보다는 그런 식으로 변론을 하고서 죽는 쪽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의 죽음에 대한 확신이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아무리 강했기로서니, 그 시대의 가장 지혜로운 자에게 어떻게 그런 판결이 정작 내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좀처럼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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