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인문학 패러다임 [바둑 읽는 CEO] 정수현 지음- 21세기북스
『바둑 읽는 CEO』, 정수현 지음, 21세기북스
세상에는 바둑 이외에도 인류와 오랜 시간 함께한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다. 바둑을 좋아하거나 바둑이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바둑이 최고로 느껴지고 바둑의 장점만 크게 보이겠지만 실상은 어떨까? 필자 역시 만 4세의 나이로 바둑 세계에 입문한 이후 지난 20년 동안 바둑이라는 단어를 떼어 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 따라서 바둑의 부흥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바둑학과 학생으로서, 미래에 바둑학자가 되어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려는 학도로서 향후 바둑이 어떻게 연구되어야 하는지 논해보고자 한다.
바둑기술전문가는 많지만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혹은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은 약 10년 전부터 상식처럼 된 얘기다.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과거에 비해 조금 나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큰 발전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제자리걸음의 원인을 필자는 바둑 연구의 방향설정 실패에서 찾고 싶다. 바둑학과가 생긴지도 벌써 15년 이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바둑이 무엇인지, 바둑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바둑학과에서 가장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혹은 다뤄야 할 학문적 의제는 무엇인지 등등이 공표되어 있지 않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장 큰 화두이자 관심사는 ‘바둑을 활용해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바둑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성과가 축적되기 보다는 당장 실효성이 있는 돈 벌이 재료들이 이슈가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바둑 또한 한 가지 측면으로 재단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둑을 그저 재미있고 유익한 놀이 정도로 여기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어내려고 마음먹기 보다는 더 깊이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연구하고 규명해서 우리 사회와 공동체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바둑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본다면 기술적인 부분이 주가 되는 바둑의 승패, 바둑 수의 영역과 바둑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교훈을 얻는 바둑 외적인 영역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바둑 기술이 뛰어난 사람은 바둑 외적인 부분 또한 뛰어난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살아있는 기성’ 오청원 9단 한 명뿐이다. 치수고치기 10번기라는 유례 없는 대혈투에서 가공할만한 승률을 거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둑은 조화”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는 등 바둑과 삶을 아우르는 통찰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인격 수양과 철학 공부를 그야말로 ‘목숨 걸고’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바둑 기술적인 부분만을 열심히 공부해서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프로 무대에서 성적을 내는 어린 기사들이 바둑 기술적으로 뛰어난 경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바둑에서 얻은 교훈, 바둑에서 얻는 여러 가지 삶의 원리들을 실생활에 접목하여 삶의 영역에서도 고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바둑학과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바둑 속에는 분명 인격을 수양하고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바둑 기술만 파고 든다고 해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바둑학과가, 바둑의 학문적 측면을 제대로 연구한 바둑학자가 바둑과 삶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바둑을 다시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봤을 때, 승패를 반드시 가려야 하는 프로시합과 즐기는 것이 목적인 혹은 뭔가 배우는 것이 목적인 아마추어 대국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오래 전 일본 프로기전에서 무승부를 통한 승부조작이 연속으로 적발되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반 집’이 생기게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일본인이 손꼽는 영웅 중 한 명인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죽게 되는 날 밤에도 무승부가 난 대국을 일컬어 ‘화국(和局)’이라며 좋아했다는 일화도 있다. 필자는 반드시 승패를 결정지어야 하는 프로 시합이 아닌 이상에야 아마추어 바둑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수치인 ‘반 집’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승패를 굳이 확인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력의 높낮이에 따라, 바둑을 두려는 목적에 따라, 대국하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따라서 바둑의 형태가 변화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승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프로시합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출중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격돌하는 모습을 관전하는 것은 바둑 팬들에게 많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경기하는 축구선수들이 상대팀을 반드시 꺾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몸싸움을 벌이는 것과 아침 조기축구에서 체력증진과 친목도모를 위해 운동장을 뛰는 일반인들의 마음가짐이 같을 필요가 없듯이 바둑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바둑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기존의 프로시합, 승패위주의 바둑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제하고 바둑이 개인과 사회에 도움을 주는 측면들을 극대화시켜서 인문학적 바둑, 사회학적 바둑, 건강한 바둑을 만들어 내고 알리는 일이다. 바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둑에 관대해져서 모든 점을 좋게 포장하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바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둑을 더욱 냉철하게 바라보고 어떤 것이 우리 사회와 개인에 좋은 영향을 주고 어떤 것이 나쁜 영향을 주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바둑 읽는 CEO』는 바둑을 통해, 바둑에서 얻은 교훈으로 사회와 개인이 발전할 수 있는 측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연구하여 집필되었다. 바둑을 인문학적 관점, 사회학적 관점, 경영학적 관점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바둑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것들을 삶의 영역과 통섭하여 인생의 교훈으로, 삶의 지침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훌륭한 공부 자료들을 토대로 후학들이 더욱 분발해서, 바둑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바둑학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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