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체호프 의 귀여운 여인 을 읽고

 1  서평 체호프 의 귀여운 여인 을 읽고-1
 2  서평 체호프 의 귀여운 여인 을 읽고-2
 3  서평 체호프 의 귀여운 여인 을 읽고-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평 체호프 의 귀여운 여인 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을 읽고
- 줄 거 리-
주인공인 올랜카는 퇴직한 팔등관 플레만니코프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사랑하였고 한 때는 숙모를 사랑하였다. 그녀는 얌전하며 마음씨가 곱고 동정심이 많은 부드러운 눈동자를 가진 아주 건강한 여인이었으며 항상 주위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아버지는 병이 들어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유언장대로 올랜카는 집을 상속 받았다. 올랜카는 건너방에 세들어 사는 야외극장 ‘치보리’의 경영자이자 연출가인 쿠킨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윽고 그녀는 쿠킨의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한 후 그녀는 쿠킨의 사상을 갖게 되었고 그를 닮아 갔다.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어 갔다. 그러나 쿠킨이 극단의 출연교섭을 위해 모스크바로 떠난 후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통보 받는다. 쿠킨을 삶의 전부로 여기던 올랜카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쿠킨은 화요일에 모스크바의 묘지에 매장되었다. 이웃 사람들은 큰소리로 통곡하는 올랜카를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난 어느날 상복을 입고 미사에서 슬픈 모습으로 돌아오던 올랜카는 우연히 이웃에 사는 바실리 안드레이치 프스토발로프와 우연히 나란히 걷게 되었다. 프스토발로프 는 바바카예프라는 상인의 재목 창고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제법 의젓하게 올랜카를 위로하며 집까지 바래다 주고는 돌아갔다. 올랜카는 그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프스토발로프와 결혼을 하게된 올랜카에게 다시 행복이 찾아왔다. 올랜카는 쿠킨을 닮아 갔던 것 처럼 프스토발로프를 닮아간다.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목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쿠킨과의 결혼 시절에는 그토록 가치있게 생각하던 연극마저 시시한 것이라 말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두 번째 행복도 프스토발로프가 감기에 걸려 사망함과 동시에 끝이났다. 올랜카는 그후 항상 검은 상복에 상장이 달린 모습으로 교회를 나가는 일과 남편의 묘지를 살피러 나가는 일 외에 집밖으로의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상복을 벗고 창문을 열어놓았다. 올랜카가 프스토발로프와 결혼 생활을 할 당시 스미루닌이란 수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프스토발로프가 죽은 후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베리아와 가까운 외진 곳으로 떠났고 올랜카는 홀로 남겨졌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점차 여위고 용모도 잃어 갔다. 그 뿐이 아니라 그녀는 주위의 사물들이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아무 의견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그녀에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올랜카는 늙어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날 거리에 가축 떼들이 쫓아가며 일으켜 놓은 먼지가 안뜰을 온통 메우고 있던 때 였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올랜카는 나가서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백발이 되어 버린 수의관 스미루닌이 있었다. 올랜카는 불현듯 모든 기억이 되살아 나 울음을 터뜨렸다. 일을 그만두고 자유를 찾아 돌아왔다는 그에게 올랜카는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살 것을 권하였다. 그리하여 수미루닌의 가족은 올랜카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올랜카는 옛 미소와 활력을 되찾았다. 사샤는 수의 부부의 아이로 열살의 사내아이였다. 올랜카는 사샤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샤의 어머니는 하리코프의 언니네 집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는 가축 검역으로 집을 나가서 집에 오는 일이 드물었다. 올랜카는 사샤를 더욱 사랑하여 친어머니 처럼 그를 돌보았다. 이웃 사람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은 올랜카를 보며 기뻐하고 말했다. “안녕하셔요. 귀여운 올랜카!”
- 감 상 -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일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어쩌면 이것은 인간이 풀어야 할 과제이자 풀리지 않을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며 나느 그 답은 사랑이 아닐까 하게 되는 생각을 했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답이 아닐까.
올랜카의 사랑은 단순히 남녀의 사랑이 아니다. 어느 한사람에 대한 맹목적 사랑.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 그것이 올랜카 한 명 뿐일까. 사실 사람이란 사랑없이 살아 갈 수 없다. 사랑이 없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이다. ‘人’이란 글자에서도 볼 수 있듯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또한 단순히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개미 따위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람의 무리 속에는 사랑이 있다. 그것이 서로를 결속시키고 인간의 사회를 구성한다.
글을 읽는 동안에는 귀여운 여인 올랜카를 비난했다. 아버지와 숙모를 사랑한 그런 감정으로 남자를 사랑하고 남편이 죽은 후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다시 그 사랑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랑을 찾았다. 유교 사상을 희박하게 남아 전해 받은 한국인으로서 지조 없는 여자라고도 여겨졌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상만 따르고 자신의 줏대라곤 전혀 없는 그녀의 사상 또한 천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글을 읽고 스스로를 생각해 보았다. 나란 사람은 정말 일생을 한 사람만 사랑하고 살 것인가, 사랑을 하고 있을 때 과연 나의 주관 대로만 세상을 바라보았다. 대답은 ‘No’ 이다. 나 역시 사랑을 하고 사랑이 끝나고 또 다른 사랑을 했다. 사람을 사랑할 땐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였고 내 주관대로 세상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지금의 세상이 감정에 치우치는 인간을 하등하게 보고 이성적인 인간을 이상향으로 보고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치 않는다. 감정없는 인간이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현실을 버리고 감정에만 치우쳐 살아간다면 불행해 질 수 밖에 없겠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만으로 살아간다면 절대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