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독서보고
서 론
우리는 이번학기 인식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가고 있다. 특히 우리의 삶, 그리고 인생이 되어질 신앙과 신학의 문제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의식화 되어 있는 기독교는 전체가 아닌 일부분에 속한것이고 이는 기독교의 세계사적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상당히 불균형적으로 습득되어 온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받아들였던 기독교는 서양의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표방하며 그것을 기독교의 표준, 기준, 잣대로 여겨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업에서 느꼈듯이 이것은 상당히 일방적이며 부분적이었다. 기독교는 서양에서의 역사도 가지고 있지만 동양에서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역사적 시점, 규모에서도 절대 뒤떨어진 역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아시아의 기독교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시아의 신학적 가치를 이번 독서보고를 통해 발견해 보고자 한다.
본 론
1) 아시아 기독교
일찍이 수업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전파가 서방은 물론 동방으로까지 진출했음을 배워왔다. 에데사를 기점으로 펼쳐나가는 네스토리안들의 동방 선교, 혹은 도마행전의 내용들이 그렇다. 이점은 이번 선정 도서에서도 동일하게 그 근거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서방의 기독교와 그 출발점과, 규모에 있어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당시의 동방의 기독교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학기 초부터 늘 가져왔던 의문점은 ‘왜 지금에 와서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 볼수 없을 만큼 쇠퇴하였을까?’ 였다. 그에 대한 이유가 간략하게 나와 있어서 좀더 눈길이 갔다. 그것은 지리적 고립, 만성적인 수적 열세, 박해, 만만찮은 아시아 종교들과의 만남, 인종적 내향성, 국가에 대한 의존성, 교화 자신의 내부 분열, 신학적 논쟁 들이 그러한 이유였다.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유럽상표가 붙은 기독교는 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리는데 실패하였다고 M.D. 데이비드는 말하였다. 나이난 코쉬,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Ⅰ」, p36.
이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중세시대 유럽의 국가들은 앞다투어 세계 많은 나라를 식민지화 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기독교의 선교 역사는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유럽의 일방적인 역사는 식민지국가의 입장에서 불의이자 핍박이었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유럽상표의 기독교 조차 달갑지 않은 종교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선교사들의 에큐메니칼 정신은 ‘아시아 교회의 산파’로서의 역할을 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의 삶과 메시지, 기독교 대학, 선교협력, 성경의 번역과 인쇄-보급은 아시아인들의 닫혀진 마음에 파고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2) 아시아의 에큐메니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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