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폭넓은 이해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중심으로-
과제의 제목을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새로운 이해로 정하고 과제를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무엇이든지, 그 내용의 주제가 정확히 이해 될 수 있어야 글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목으로서 공부하는 아시아 기독교사 연구는 기존에 알고 있는 인식을 깨뜨리고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보이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통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선교의 방향과 우리가 학습하고 있는 신학의 전반적이 이해가 서구화, 즉, 유럽과 북아메리카 위주의 학문이 되어서 널리 전파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제의 제목을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폭넓은 이해라고 명명하였다.
제목은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폭넓은 이해 이렇게 삼등분을 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데, 일단 아시아는 지리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아시아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아시아는 기독교의 부분에서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서의 대상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이해로서의 아시아는 결코 주체나 객체가 정해져서 대상화 할 수 없다는 것을 이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언급하게 된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넣은 것은, 이 운동을 통해서 묻혀 있었던 아시아 기독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넓은 이해는 필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저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진행해 온 산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운동은 아시아의 영향을 배제시키고 일어날 수 없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제목을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폭넓은 이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본론의 내용을 전개할 때는 아시아 기독교에 대한 내용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한 어떠한 폭넓은 이해가 됐는지를 설명 하도록 하겠다.
1. 아시아 기독교
흔히 알고 있는 교회의 서진을 필자는 정설로 이해하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신학을 했었다. “정통은 장로교의 중심인 칼빈과 쯔빙글리 앞서서는 루터의 개혁 교회를 말하는 유럽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주된 선교인 북아메리카의 신학들인 서구의 신학이다.라고 받아들였고,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신학을 중심으로 신학을 해야 하고, 그것만을 통해서 목회를 해야한다.”라고 생각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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