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독교사 연구 수업에 참여하며 아마 모두가 가졌던 생각은 기독교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깊은 수준의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 클래스 모두가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이 책 ‘나이난 코쉬의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역시 이것과 비슷한 성격의 성찰을 시작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서양적 견해를 거부하며 아시아 기독교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는 아시아인들에게 서양 그리스도로 진술되었고, 아시아 토양에 근거한 아시아적 그리스도의 역사는 아시아 안에서 서양 선교기구들의 역사로 대치되어 왔다. 라고 말하는 센과 J.C.잉글랜드, T.V.필립의 견해를 소개함으로 저자는 이러한 성찰의식을 더욱 강화한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 클래스가 지금까지 연구해온 주제들과 논쟁점이 여기서도 기술되어지고 있었다.
기독교의 가장 초기 중심지들은 아시아였고 기독교 문화, 건축, 문학과 예술의 요람이었다. 또한 서양 선교사 이전부터 네스토리안 상인들과 선교사들은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활동했었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존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기독교의 역사를 훗날의 선교사업과 동일시함으로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즉 그것은 훨씬 더 일찍이 아시아에 교회가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1500년 기간의 아시아 기독교에 의해 이루어진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흐름을 인지하고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시각은 우리 클래스가 가지고 있는 그것과 비슷한 듯하다. 저자는 이후의 쇠퇴역사부터 서양의 지배적 선교에 대하여도 살펴본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것을 발판삼아 에큐메니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아시아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 역시 사실인데, 쇠퇴 이후 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일어난 제국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기독교선교정책들은 더욱이 비판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이 세 논점들 모두의 뿌리에는 종종 인종차별주의 경향을 동반하는 서양의 정치적 지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선교사들의 모습을 통해 에큐메니칼적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스 루에디 베버는 아시아와 관련해서 그 중요성을 설명한다. 첫째 그는 선교사가 되는 영광에 관하여 말한다. 둘째 선교사들의 실패인데 그것은 아시아인들에게 더 명백하게 드러났다. 셋째 선교사들이 주는 에큐메니칼적 중요성은 “아시아 교회의 산파”로서의 역할이다. 선교사들의 실패는 부분적으로 아시아의 역동적인 반발과 아시아인들의 종교적 차원을 이해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또한 선교사들은 도덕적 우월감의 태도와 자신이 배타적으로 의롭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독교 선교사역이 침략적인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저자가 강조하는 에큐메니칼적 요소로서 종교적 차원에 대한 이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종교적 차원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 차원에 있어서 수용과 토착화뿐 만이 아니라 무분별하고 배려 없는 독선적 배타성에 대한 지양이라고 생각한다. 배타적인 태도의 고수는 어떻게 보면 폭력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적 선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숙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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