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읽기(讀)란 무엇일까]
이번 과제를 받고서 나에게 ‘독(讀)’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려서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책이라면 손에 들리는 대로 거침없이 해치워 나갔었다. 그만큼 독서란 나에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아마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까지는 그랬다. 대학생이 된 지금의 나는 어떤가.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들만 보아도 속이 다 울렁거리고 심지어는 침을 흘리며 잠들기 일쑤다. 우스갯소리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책을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읽기에 대한 애정이 차디차게 식었다는 것을 어떠한 핑계로도 변명할 수가 없다. 讀의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홀히 대하고 있었던 나에게 채찍질을 해본다.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순전히 이 책의 저자이자, 나의 글쓰기 교수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처음 뵀을 때부터 무언가 독특하고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신 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글쓰기 강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신다. 알 수 없는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다 싶다가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끔 하는 재주가 있으신 분이시다. 내가 가르침을 받고 있는 교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글을 쓰시는지 좀 더 알고 싶어 졌다. 책은 크게 논(論)과 해(解)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심론, 관론, 독론, 사론, 서론에 관한 37계로 이루어져 있다.
[心論-마음]
저자는 글쓰기에 있어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박하고 맑은,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말에 나도 대단히 공감하는 바이다. 이런 말을 하긴 좀 부끄럽지만, 꽤 오래 전부터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일기나 메모장에 글로 표현하곤 한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내 마음과 감정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풀어나간다. 물론 글은 막힘 없이 술술 잘 써진다. 오히려 내 생각의 속도를 펜이 못 따라올 정도다.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가끔 눈물 흘리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한다. 아마 마음을 다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반면, 내가 써야만 해서 글을 쓸 때는 무엇을 어떻게 써내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짜증이 솟구치기까지 한다. 대입을 위해 논술 연습을 해야 했을 때도, 죄송스럽지만 글쓰기 과제를 할 때도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이렇듯 글에 나의 마음이 없으면 글은 색을 잃고 흐리멍덩해지며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觀論-보기]
제 3계(오동누습)를 보면, “오늘날 사람들은 다만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속된 꺼풀을 가지고 있어 뚫어 보지를 못 한다. 학문에는 학문의 꺼풀이 문장에는 문장의 꺼풀이 단단히 덮였다.”라는 박제가의 말이 나온다. 순간 박제가가 마치 내 눈 앞에서 나를 질책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나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혹은 좀 더 돋보이기 위해서 가식적인 언어로 나를 포장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좋지 않은 행동이라 느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글에 가식이 섞이는 순간 읽는 사람에게 진솔한 마음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속된 꺼풀을 벗어야 한다.
관론을 읽다보면, 보는 일에도 마음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연암은 마음을 써서 사물을 보아야만 그것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우리의 눈으로만 사물을 보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물을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열정과 의지가 심안을 만들고, 심안을 갖춰야만 변별진위에 다가설 수 있다. 사물 보는 데도 마음이 필요하니 이 때문에 아마 저자가 마음을 글쓰기의 첫 단계로 삼지 않았나 싶다.
[讀論-읽기]
다산은 읽은 책에서 문장이나 구절을 취하고 버리면서 중요한 요점만 가려 뽑아 적어두는 독서법인 “초서지법”을 권한다. 이 때 초서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뜻을 굳건히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 역시 독서를 할 때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떠넘기게 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충고한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내 뜻으로 읽어라”일 것이다. 나의 가치관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고서 독서를 하면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릴 것이다. 나도 가끔 독서까지는 아니지만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그를 반박하는 댓글이 있으면 이 댓글도 맞는 것 같고, 저 댓글도 맞는 것 같아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게다가 그럴듯한 논리로 풀어 쓴 댓글을 보면 마치 그것이 진리인 양 믿어버린다. 이는 내 스스로 나의 뜻을 확고히 세우지 못한 채 댓글을 접했기에 댓글들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를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뜻이 굳건히 세워지지 않았다면, 어떠한 책을 읽어도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게 읽히는 것일 수밖에 없게 됨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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