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르지치 않는다 우리는 가르지치 않는다 독후감
그냥 취미로 해.
중학교 때. 내가 미술이라는 장르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부모님께 말을 했더니 자연스럽게 돌아온 반응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포기하지 않고 깨작거리며 연습장을 채워나가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아주 작은 화실에 나를 보냈다. 집과 붙어있는 작은 미술학원이었는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아이들이 전부였다. 지금 내가 생각해보면 이 화실은 그냥 일반 아동 미술학원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는 나에게 큰 종이를 주고 선을 빼곡히 채우는 것부터 시켰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수채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번 주에 풍경화 했으니까, 이번 주에는 정물화 하자, 이번 주에는 이걸 만들어볼까?
사실 지겹진 않았다, 그냥 선생님이 하나하나 놓아주는 징검다리를 발을 조금씩 뻗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을까. 그냥 붓질을 하는 것이 재밌고 그리는 행위에 재미를 느꼈지만 그 곳에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그려야하는 가에서 생각하는 내 자신이 없어졌다. 단순한 내 성향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지금에 나에게도 아직 가늘게 뿌리내리고 있다.
내 친구들은 모두 공부를 하거 이래저래 굴려졌다. 학교가 끝이 나면 친구들을 잘 볼 수 없었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부모님의 생각이 아이들에게도 박혀있었다. 과외다 학원이다 노량진이다. 줄줄줄 다니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공부, 니가 알아서 할 만큼 해. 누군가에게 지고 싶지 않은 내 성향을 잘 알고 하신 말씀이 분명하다. 화실에 가서 성적이 떨어지면 그걸 못 이기고 그림을 포기할 줄 알았더란다. 나중에 들었지만.
하지만 그리는 것에 대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입시 미술학원에 들어가 자리를 하나 꾀어 차고앉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림은 형편없었다. 작은 화실에서 풍경화만 죽창보고 그리고 나오니 그릴 수 있는 건 나무 뿐, 다른 것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경계가 생겨 버렸다. 하지만 입시 미술학원에 들어가자 마자 선생님은 넌 뭘 그리고 싶니? 그래서 나는 나무가 없는 풍경이 그리고 싶어요ㅡ대답했다. 그 학원에 다니면서 우리는 입시 미술을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는 스스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고, 선물을 그리고, 서로에게 줄 카드에 그림을 그렸다. 석고를 그리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한 준비물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있는 드로잉북이었다.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이 이 곳에 내 그림을 모아두면 좋겠구나 하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크기도, 재질도 재각각인 드로잉 북을 들고 앉았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단상 위에 포즈를 취하고 서로를 그렸다. 모델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은 드로잉북을 하나하나 보시면서 우리에게 우리 그림의 장점을 말씀해주셨다. 선이 좋구나, 눈 모양이 현실감 있어, 표정 인상을 잘 잡았구나, 작은 것을 놓치지 않았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선생님이 바뀌더라도, 바뀐 선생님은 ‘선생님, 제가 사람을 그리고 싶어요.’하면 선생님은 ‘나중에라도 그 그림을 그려서 오렴. 선생님이 도와줄게’. ‘케익이 그리고 싶어요.’ 하면 선생님은 추운 날, 케익을 사가지고 학원에 왔다.
여기에서 미대에 들어온 내가 만들어졌다.
친구들의 미대 입시는 힘들었었지만, 나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눈물 나도록 행복했다. 다른 입시 학원에서는 똑같이 표준에 올라가는 그림을 가르친단다. 나는 똑같이 그리게 시킨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선생님은 나에게 목표치를 정해주고, 내 안에서 내 단점을 장점으로 바뀌는 것을 가르치는 데에 치중했다. 사실, 그래서 입시를 한 번 더 준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재수라는 강박 안에서 선생님과 함께하는 그 날은 그냥 즐거웠다. 입시학원이긴 했지만 작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그림을 보면 저녁시간에 그 그림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눴다. 공부를 하면서도 빨리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미술학원에 있는 동안에는 그림을 안 그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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