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독교사 감상문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그동안 수업시간에 함께 공부했던 탈식민주의와 네스토리안의 선교활동에 대한 내용을 되짚어 본다면 복음의 서진과 동시에 복음의 동진은 분명히 있었고, 순탄치 않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과 선교활동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 오랜 시간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시아 기독교 역사를 훗날의 선교사업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우리도 모르게 서구중심적 기독교 세계관을 갖게 되면서 아시아에 기독교가 전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대부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인도의 케숩 챈드라 센의 말을 빌리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준 위대한 종교들은 그들의 기원을 아시아에 빚지고 있다.’고 하고, 현시대에 복음의 불모지라 말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티베트 같은 나라들이 오래전엔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 때, 아시아의 기독교 역사는 결코 뿌리가 없는 것이 아니며, 서구 기독교의 선교활동을 통해서만 복음을 전해들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아시아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얼마 전부터 나에게는 이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중요한 사실이다.
제국주의와 함께 아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들어온 서구기독교의 선교활동은 아시아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있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 우월주의 등으로 오염된 선교의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부패하고 폭력적인 선교활동은 결국 ‘하나님의 선교’가 아닌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의 합리화도구로 전락했고, 결국 ‘모라토리움’을 외치게 만들었다. 제국주의적이고, 우월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선교방식을 통해 경험하게 된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는 우리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선교(전도도 포함)하게끔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비기독교인 및 타종교인과 다른 민족들을 죄악시 치부하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는 결코 온전한 복음이 아니었다. 폭력적이었고, 배타적이었다. 폭력으로 길들여진 우리기독교는 이제, 보고 자란 그대로 폭력적인 선교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미 그 부작용은 여러 선교지에서 일어났고, 우리가 외쳤던 선교사 모라토리움을 듣게 되는 상황으로 변모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사들이 주는 아시아 에큐메니칼의 중요성을 몇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책 참고 - 아시아 기독교, 39-40p). 선교의 실패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말하게 했고, 아시아에서 에큐메니칼을 자각하게 하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는 EACC, CCA, WSCF, YMCA 등의 활동이 주도 하며 발전을 이루었다. 그들의 신학적 관심은 조금씩 다르지만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역사를 살펴보면서 발견할 수 있는 큰 줄기는 고난과 함께 해 온 아시아에서 해방과 일치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땅에 가득하길 소망하며 그 길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신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야기되고 있는 생생한 문제들과 대화하여야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에큐메니칼에서는 이 세상,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결코 배제시키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아시아에서 살아가면서 아시아적 기독교, 한국적 기독교를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으며, 사회와 분리되어 기독교만 잘 살아남길 바라서도 안 된다.
아시아 교회가 관심을 가진 논쟁의 방향 중 하나는 서로 다른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신앙고백을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아시아 기독교에서 교회의 일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러한 일치 가운데 세상 앞에서 함께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에큐메니칼적인 신앙고백은 제 자리에서 서서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회는 선교적 의미에 있어 최전선에 나선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얻고, 사상과 행동 및 문화와 구조가 다른 땅에 가야하고, 그러한 모험에 반드시 따라오는 실패를 감수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해방과 일치를 위한 고통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교회들은 실패를, 고통을 감수하려는 교회가 아닌 성공의 달콤함만 쫓는 교회들이 상당히 많다. 외적 성장에, 양적 부흥에 목숨 걸며 예수 그리스도를 쫒는 것이 아닌 돈과 명예를 쫒기에 바쁘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상품을 잘 포장되어 팔고 있으며, 세상의 문제에는 등 돌리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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