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틀 속에 갇혀버린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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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
- 틀 속에 갇혀버린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엄청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을 내포하고 있을 것만 같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이전에 레포트를 하기 위해서 읽었던 사회학에의 초대나 고독한 군중보다 ‘더 흥미롭고 읽기 쉬운 책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큰 깨달음과 책을 읽는데 있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내 삶의 편견과 틀을 깨버릴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구성부터 특이했다. 내가 여태껏 읽어왔던 책들은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표현하는 독특한 구성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실제 수업시간에 했던 학생들 간의 토론 내용을 책에 담아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주체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더 와 닿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책을 읽는다. 하지만 ‘과연 책을 읽고 자신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해보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책을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함축된 메시지만 찾는데 열중한다. 그러고 나서 단순히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거나 비판하는 정도로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을 마무리 한다. 내 자신의 주체적인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책읽기가 아닌 내용을 파악하고 중요한 부분을 찾고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한 책 읽기였던 것뿐이었다. 이 책의 작가는 이러한 행동을 비판했다.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 그 내용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이를 ‘겉도는 글, 헛도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식민지 시대에서의 글 읽기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한 마디로 책을 읽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탈식민지 시대의 글 읽기가 아닌 식민지 시대에서의 글 읽는 사람들과 같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억압되고 강요되며 수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수용하고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수동적인 책 읽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을 쓴 작가는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고 사용하는 것들은 모두 서구화된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의 생각과 사고의 자유는 점점 사라지고 서구 사회에 길들여지며 심지어는 주체적인 사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서구 문화의 사회와는 다른 점이 너무 많기에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만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고와 함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어느 정도의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했으나 그런 점이 많이 부족했다. 마치 그것이 우월하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수동적인 수용을 해왔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주체적인 사상은 깨지게 되고 나중에 우리 내면에 더 큰 혼란을 가지고 온다.
작가는 식민지성을 비판하고 탈식민지를 강조하면서 현재 우리나라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를 비판한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보다는 공부와 연관 지어 미래의 직업을 갖는 것을 더 선호한다. 공부를 못하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는 것 보다 소위 말하는 의사, 변호사, 판사와 같은 높은 명성을 가진 직업을 갖기를 희망하는 부모님들로 인해 우리는 더더욱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에 빠져들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는 우리에게 주입식 교육을 가르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론 위주의 내용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이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와 기회는 없다. 단순히 배운 것을 단시간에 암기하고 형식적인 시험을 치르는 것에 우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독창적인 사고를 펼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이에 맞춰 우리는 더욱 더 수동적인 삶과 가치관을 형성할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무조건적으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야간자율학습(소위 줄여서 야자라고 말하는) 또한 주입식 교육 그리고 입시 위주의 교육 경쟁에서 살아남는 수동적인 공부 방법이었다. 분명 누군가는 조용한 곳 보다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 있는 곳에서 공부가 더 잘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여러 명이 한 곳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자기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더 집중하고 공부가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들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야자는 우리에게 자유를 억압하고 생각과 우리들만의 가치관 형성을 억압하는 수단이었다. 다양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가진 우리들에게 획일적이고 강요적인 삶의 일부분을 경험하게 한 것이 바로 입시 교육 체제였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는 조금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수업 방식이나 시험이라는 큰 틀은 같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처럼 완전히 주입식이 아닌 어느 정도의 생각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만 보아도 교양 과목과 몇몇 전공과목의 경우 고등학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교수님이 2시간 내지 3시간을 수업하고 몇 주가 지난 후 시험을 보는 것이 고등학교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우리 과 전공 같은 경우는 시험을 모두 서술형으로 보기 때문에 처음에 나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대학에 들어오기 몇 달 전까지는 객관식과 단답형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있었던 나였기에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고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이 어렵고 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대학 내에서도 통일 되지 않은 수업 방식은 막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혼란과 주체적 사고의 어려움을 가져올 뿐이었다.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주체성 있는 생각을 강조하기 위한 곳이 대학이라고는 하지만 몇 년 동안 길들여져 온 입시생들에게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큰 벽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