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십시일반을 읽고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십시일反은 내가 알고 있던 열 숟가락이 모여 밥 한 공기를 만든다.라는 십시일飯(반)이 아닌, 열 명의 작가가 만든 책으로 하나의 차별에 맞서 싸운다.라는 뜻이다. 이 책은 인권, 차별에 대해 다루었다. 인종, 외국인노동자, 동성애자, 여성,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고 차별을 바꾸기 위해 만든 책이다. 밥 한 그릇으로 인권에 더 가까워지고, 일성 속에서 지혜롭게 차별과 차이를 가려낼 줄 아는 인권의 감수성을 높이고, 그 감수성이 쌓여 우리의 지독한 편견과 굳어버린 습관이 무너지길 바란다고 편집자들은 말했다. 이 책은 총 4개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 칸의 현실, 습관적인 일상적인, 편견과 오만, 낯선 자화상.
한 칸의 현실에서는 한 페이지에 그림이나 만화가 그려져있다. 여러 말을 하지 않고 짧으면서도 굵게,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만화들이다. 눈으로 한번 훑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 한 페이지가 무슨 의미들을 닮고 있을까. 여러 번 쳐다보게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그림도 많았다. 우선 박재동 작가의 집값이라는 만화에서는 장애인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애인의 집이라는 장애인 시설이 동물 축사 옆에 있는 것도 모자라 축사 속의 동물들까지도 집값이 떨어진다며 다른 데로 가라며 장애인들을 쫒아 내려고 한다. 장애우를 보호해 주지는 못할망정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기위해 그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또한 공공시설에서도 장애인들을 배려한 시설은 보기 드물다. 머나먼 신호등에서는 장애인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금방이라도 옆에서 파도가 덮칠 것만 같은 횡단보도를 험난하게 건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는 처음에 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이 기나긴 횡단보도는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파도는 뭐고 이 사람들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이 그림의 뜻을 잘 이해하기위해 검색을 해본 뒤 비로소 이 만화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집 밖에서 불편함을 많이 느끼고 많이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들을 위한 시설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 역시 그들에게는 불평등으로 다가온다. 나부터도 지금은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말아야지. 따뜻한 눈길로 보고 도와드려야지.하지만 나도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상당히 어렵고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내가 그럴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 장애인 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느끼게 된 것이다.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뜻한 손길로 보듬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삶의 무게라는 그림은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위에 있는 사람을 받치고 있다. 가장 위에는 평온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남자, 그 밑에는 그 남자를 받치고 있는 여자,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여자를 가난한 여자가 받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층을 받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여자+ 가난한 사람+ 외국인 노동자이다. 맨 위의 평온한 남자와 맨 밑의 가난한 여성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이 대조되어 삶의 무게라는 제목이 더 와 닿았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림이었다. 내 주위에 이런 여성 외국인 노동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경제적으로도 힘들게 살고 있으며 많은 차별과 억압 속에 힘들다는 것은 TV나 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 했다. 그런데 작가는 왜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라고 하지 않고 가난한 여성 외국인 노동자라고 했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양성평등이라고 해서 여성들의 지위와 인권이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아직도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여성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가 이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사회로 발전하길 바란다. 그리고 숨겨진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나에게 약간의 답답함을 주었던 손문상 작가의 그림을 살펴보면 우선 사회적 유전은 법관 아빠는 법관 아들을 낳고, 부자는 부자아들을, 의사는 의사아들을 낳고 청소부는 청소부 아들을 갖는다. 또한 법관, 부자, 의사와는 다르게 청소부와 노동자들 사이에 거리를 두어 이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의 세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평등의 세상은 학력, 지위, 재산, 소득이라는 차별을 뛰어넘어 결국 평등한 것은 조세 평등으로 세금만 똑같이 낸다는 것이다. 불평등의 세상을 나타내려했던 것일까? 최종합격에서도 집이 월세이냐, 출신대가 어디냐, 기혼이냐를 따지며 결국 그 사람의 뒤에 있는 소위 말하는 빽으로 최종합격이 결정지어진다. 우리사회에 부의 세습만큼 만연한 학연, 지연, 배경이 한 사람의 미래에 우리의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비판하는 것 같다. 한 칸의 현실에서는 정말 한 칸 안에 우리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습관적인, 일상적인에서 홍승우 작가의 만화를 살펴보면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애한테 무슨 일을 시켜? 라는 만화가 나온다. 이 만화는 남녀차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슬픈 내용이다. 이야기속 여자는 직장에서 바쁘게 일을 한다. 겨우 다 끝나고 바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제삿날이라 시댁에 간다. 시어머니는 쉴 틈도 없이 오자마자 늦었으니 어서 전부터 부치라고 한다. 여자는 전을 부치고 제사음식을 차리고 과일을 들어 올리려고 하다 잘 안되자 자고 있는 남편을 불러 조금 도와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시어머니가 와서 하는 말이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는 애한테 무슨 일을 시켜."였다. 내가 들은 것 마냥 어이가 없었다. 직장인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인 여자는 똑같이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왜 여자만 그런 소리를 들어야하고 힘든 일은 다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하는 시어머니의 말과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러한 여자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연하다는 듯이 행해지는 그 사실이 더욱 여성들을 비참하게 하는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상생활 속에 당연시 되고 있는 성차별이 하루빨리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행동들이 성차별을 부추기는 행동들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지개 깃발에서는 남자가 동성애,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제는 생소하고 낯설지가 않다면서 이 세상엔 다양한 인종과 성정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고 같은 인간이기에 평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들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와서 보여주자 혐오스럽다며 빨리 지우라고 한다. 동성애자들과 트랜스젠더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은 그렇지 않다는 우리들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만화이다. 말로만 그들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인식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희재 작가님의 첫발자국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거동에 불편이 있는 해연이의 이야기이다. 다리를 절게 되었을 때, 맨 처음 두려웠던 것은 동정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의 눈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아직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았을 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보내는 눈빛이 그 많은 눈빛들을 감당해야하는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와 아픔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동정의 눈빛으로 쳐다봐야할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만화에서는 해연이가 학교에서 부딪히게 되는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일상 속에서, 학교생활 속에서 이동과 교육에서 침해받고 있음이 묘사되었다. 그리고 해연이가 체육시간에 공을 받아치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주변 친구들처럼 공을 받아내서 기쁘겠다 생각했지만 의외의 말에 놀랐다. 공을 받아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한 체육수업이어서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보고 아직도 장애우들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만화를 보면서 해연이가 자신의 장애 때문에 위축되거나 소심해지지 않고 결국은 세상으로 한걸음씩 내딛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또한 해연이를 도와준 친구들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남준 작가님은 ‘누렁이’라는 소재로 사뭇 분위기가 다른 두 작품을 만들었다. ‘누렁이 1’에서는 아파트 평수에 따라 나눠지는 계층의 문제를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표현했다. 아이들끼리 아파트의 크기로 서열을 정해 같은 종의 강아지를 자기보다 못한 평수에 사는 집에 사는 애의 강아지가 자기 강아지랑 노는 것을 끔찍해하는 모습은 무척 씁쓸했다. 그렇게 무시당하고 나온 여자아이는 자신보다 작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자신의 강아지와 그 아이의 강아지를 비교하며 무시한다. 지나치게 빡빡한 경쟁사회에서 약자는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더 잔혹하게 밟고 올라가려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렁이 2’는 가부장의 폭력을 가슴 아프도록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동물학대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어느 한 가정의 아빠가 보신탕을 끓여먹기 위해 자신의 개 한 마리를 나무에 묶어놓고 팬다. 누렁이는 가까스로 도망쳤는데 주인이 오라고하자 다시 주인 곁으로 갔다. 결국 주인은 누렁이를 죽이고 강아지를 팰 때 아빠가 한 말은 삼일한이다. 삼일한이란 북어와 여자는 삼일에 한번 패야한다고 말했다. 그런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말투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아빠는 술을 마시고 들어와 엄마에게 폭언을 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행사한다. 왜 엄마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길 포기한 걸까? 누렁이처럼 길들여진 걸까? 하는 말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엄마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면 더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엄마는 집과 아빠를 떠나기 위해 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 붙잡는 아빠를 밀치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멋있었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으면 아빠를 떠나는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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