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독서 기행문 강진을 다녀와서
11월 29일 아침 전날 비가 내려 날씨가 습하고 햇볕도 쬐지 않는 음산한 날에 광덕고등학교의 독서동아리인 ‘바람개비’는 강진으로 독서기행을 떠났다.
가장 먼저 도착한 장소는 영화 ‘천년학’으로 유명한 곳인 ‘선학동’이었다. 선학동은 ‘학의 날개’라고 불릴만한 거대한 산이 뒤를 둘러싸고 있고 바로 앞에는 바다로 흘러드는 강이 있는 작은 마을 이었다. 그러나 마을 앞에 있는 커다란 비석에 적힌 선·학·동이라는 글자는 비록 작지만 유명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담고 있는 듯하였다. 거기다가 바닷가의 바로 앞에 있는 초가집은 필자가 바다위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비록 오랫동안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소설 ‘선학동 나그네’에서 묘사된 ‘비상학’의 모습을 띄고 있는 그곳의 정경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소리꾼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선학동을 떠난 뒤 약 30분 뒤에 우리는 앞서 들렀던 선학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작가인 이청준의 생가였다. 이청준의 생가는 가난하게 자란 그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초가집 이었는데 판자로 뒤덮인 다른 집의 지붕의 잿빛과 달리 황금빛 짚으로 역어진 초가집은 작가의 명성과 옛 풍경이 합쳐져 다른 집보다 높게 솟은 것 같이 금방 눈에 띄었다. 또한 우리가 얼마 전에 학교에서 배운 소설 눈길의 배경이었기에 더욱 필자의 흥미를 끌었다. 집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는데 마을사람들과 이청준의 관계자들이 그 집을 보존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집의 풍경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장소는 장독대가 모여 있는 곳 이었는데 여러 마리의 햄스터가 옹기종기 모여 웅크려 있는 듯 둥글둥글하게 생긴 장독은 옛 정경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청준의 집에서 나오는 시골의 정경에 마음을 뺏긴 눈을 달래서 주변의 풍경에 초점을 맞췄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선학동의 산보다 더 크고 웅장한 산 이었다. 커다란 산이 이청준의 생가를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곳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눈길’의 노인네가 아들을 보내고 부끄러운 마음에 우리가 있는 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웅장한 모습의 산을 뒤로하고 이청준의 생가에서 나와서 그 마을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니 비로소 독서기행의 느낌이 나서 기분이 상쾌했다.
방문한 장소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과 앞으로 방문한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몇 시간을 달려 우리는 다산초당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볼 수 있었던 많은 인파와 거대한 건물은 조선이 낳은 대학자 정약용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필자는 일행들과 함께 산행에 올랐다. 산길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향기롭게 우리를 감싸오는 산내음은 산을 오를 시간이 거의 없었던 필자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또한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방진 자들은 초록빛 빛깔을 자랑하며 높게 솟아있어서 필자 또한 그것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는 정약용의 다산초당에 도착하였다. 다산초당은 과거에는 초당이라는 이름과 어울리게 짚으로 엮은 초가였으나 지금은 기와집으로 복원된 채로 남아 있다고 한다. 다산초당 옆 작은 길로 들어서서 몇 걸음 걷자 보이는 글자 ‘정석(丁石)!’ 비록 그 깊은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바위위에 골짜기처럼 새겨진 정교한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자가 새겨진 바위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우리는 교과서에서 본적 있는 익숙한 백련사로 향했다. 백련사로 가는 길은 비록 멀긴 했지만 깊은 산속으로 들어 갈수록 숲은 울창해져서 하늘을 가리고 우리에게 싱그러운 느낌을 주는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백련사로 향한지 약 30분 뒤 백련사에 도착! 고려시대에 요세가 ‘백련사 결사’를 일으킬 당시 국가의 중심이었던 절이라서 그런지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있는 것 같았다. 특히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왔다는 거대한 비석은 글자는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1000년의 세월에서 느껴진 웅장함은 500년 고려왕조에서 불교가 가지는 역할과 의무를 보여주었다.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필자는 기행의 결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이 기행 전에도 강진에 몇 번 왔었지만 이번 기행
처럼 많은 지식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기행은 정말 유익한 기행이었다고 하겠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