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

 1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1
 2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2
 3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3
 4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4
 5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5
 6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 레포트 > 독후감
  • 2015.03.29
  • 6페이지 / hwp
  • 1,000원
  • 30원 (구매자료 3% 적립)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독서보고서
이 책은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관점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준으로,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거기에 따른 처방을 모색한 책이다.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목표를 공유하는 저자는 작게는 한국에, 크게는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체화하기를 바란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세계는 지리적, 공간적 개념의 세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과 함께 정치, 경제 등 제반 분야 모두를 포함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유형, 무형의 모든 영역이 저자가 말하는 세계인 것이다. 저자가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어야 할 범위,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할 영역을 그렇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하고, 그것이 국가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그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왜곡되는 역사이기도 하고, 그 나라의 개념이 형성되고 발전된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국가를 포월(包越)하는 교회로 이해되기도 했고, 국가와 분리된 교회로 이해되기도 했다. 또한 개인의 영혼구원과 성화로만 이해되기도 했고, 현실 속에서 차별받는 인권을 신장시키는 것으로만 이해되기도 했다.
교회는 세상의 일부로서 세상과 대화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적용해온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과정에서 이해되고 적용되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원래 하나님의 나라와 얼마나 다르거나 비슷했는지를 독자에게 알리고, 양자의 차이를 줄여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길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먼저, 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다음과 같다. 저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공공성과 같은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공공성이라는 말이 계몽시대에 생겨난 말이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공공성의 사전적 정의(① 공공적인 것은 공개되어서 누구나 듣거나 볼 수 있는 것 ② 개인이 아니라 많은 사람 혹은 전체 대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③ 국가나 공공기관들과 관련된 사안들 등)와, ‘공동체 내에서 제반 법률들이나 제도들이나 정치적 행위들은 공공성의 원리를 따를 때 정당하며 그것을 부정하고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은밀하게 어떤 사적 목적을 추구할 때 그것은 부당하며 공동체의 평화는 깨어지고 갈등이 야기된다는’ 공공성에 대한 정의, 즉 칸트가 현실에 맞게 구체화한 공공성에 대한 정의가 하나님 나라의 내용과 지향에 부합한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은 평화를,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지향한다. 저자에게 평화는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의 원리로 이해되며, 또한 저자는 유형, 무형의 제반 영역(세계)에 평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막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정교분리와 그것에 대한 믿음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교의 역사, 교회의 역사에서 정교분리라는 교리(?)가 빠지는 적은 거의 없었다. 새로운 배경의 등장으로 새로운 문제가 발생될 때 교회가 하는 대처에서 정교분리 얘기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정교분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전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후에 가서 살게 될 천국으로 이해되는 편이고, 후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되는 편이다. 양자는 신앙생활의 목표도 다르다. 전자의 목표는 자기가 천국에 가는 것, 후자의 목표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교분리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 구현을 기대하는 일은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정교분리를 믿는 사람에게 세상은 바꿔야 할 곳이라기보다는 출세해야 할 곳,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곳, 지나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정교분리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마틴 루터의 두 왕국론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마틴 루터가 정교분리를 말하지 않았고 그것은 두 왕국론을 잘못 해석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라고 밝히고, 정교분리를 고수할 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 그리고 그 대안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루터가 말한 두 왕국론이 의미하는 것은 정교분리가 아니라 정교구별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정치, 교회 두 영역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정치에서는 칼(무력)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교회에서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각각의 영역과 방식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고 통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각 영역에 속한 사람이 지킬 것은 두 영역의 직무를 겸임하지 않는 것이고 상대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각 영역과 방식은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각 영역에 속한 사람은 자기 영역을 지키고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서로는 각자가 자기 직무를 잘 수행하는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각 영역에 속한 사람이 상대방 직무를 하려 할 때는 자기 고유의 직무로 돌아가도록 경고하고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을 통해 두 왕국은 하나님의 세계 통치에 봉사하게 된다고 루터는 말하고 있다.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이 말하는 것은 정교분리가 아닌 정교구별이기 때문에, 그 이론을 정교분리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 두 왕국 이론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교분리는 루터가 말한 두 왕국론을 사람들이 오해한 결과로 생겨나게 된, 어떤 근거도 없는 사상인 것이다.
정교분리는 비현실적인,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 중에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종교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들도 정치적 영향력 하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