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그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친구들과 동창회를 가졌다. 10년 만에 본 선생님과 동창들의 재회였다. 사실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은 뒤 친구들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졸업앨범을 펼치기도 했는데, 다들 많이 변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났을땐 서로 보지 못한 10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한명한명 다 기억이 났다. 24살의 젊으셨던 선생님이 지금은 아줌마가 되셨고, 늘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했던 아이들의 얼굴은 어느덧 의젓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서로 보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어 어색하진 않을까 하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6학년 때의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면서 자리는 어느새 추억의 장터가 되었다. 누가 누구랑 싸웠던 이야기, 화분을 깨서 선생님께 혼났던 이야기, 처음 담임을 맡았던 24살의 선생님이 감당하기엔 힘들어 우리에게 화도 많이 내셨던 이야기. 사람마다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다 달라서 누가 얘기를 하나 꺼내면 아이들 모두가 이구성동으로 “맞다! 그런 일도 있었지!”라며 얘기를 거들었다.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지나간 기억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들 각자의 바쁜 생활에 10년 동안 잊고 살아온,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은 없었던 기억도 아니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대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잠시나마 잊고 있었지만 언제나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이었다. 심리학책에서 본 글 한 구절이 생각났다. “기억은 회상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추억이다.
추억을 생각하면서 미소 짓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의 주위에는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써니와 바람이라는 영화이다. 두 영화 다 주인공들의 고교시절을 스크린에 담아내고 있다.(참고로 써니는 많은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었다.) 그리고 작년 엄청난 열풍을 몰고 온 ‘응답하라 1997’을 빼놓을 수 없다. 응답하라 1997의 인기비결은 배우들의 주옥같은 연기와 스토리뿐만 아니라 1997년을 생생하게 추억하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의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또는 말도 안 되는 막장스토리가 만연한 가운데, 90년대를 추억 한다는 것은 엄청난 소재의 발굴이었다. 이 드라마의 핵심 포인트인 향수를 자극하는 배경음악도 그 인기에 한 몫 한다. 그렇다면 제작진들은 왜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인가? 추억은 힐링의 시간이 되고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머 글이 많이 올라오는 인터넷카페에서 종종 추억의 만화영화, 추억의 과자 등등의 게시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지”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 댓글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추억속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은 왜 아름다울까?
추억이 아름다운 첫 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다시는 돌아 올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종종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고등학교 때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자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때가 젤 아름다운 거다.”였다.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아니, 타임머신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나는 그 시절에서 벗어난 존재 이니까. 더 이상 그때의 ‘나’가 아니다. 모두들 가슴 아픈 첫사랑(꼭 첫사랑이 아니더라도)의 기억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정말 많이 사랑했던 그 사람과의 이별이 슬픈 이유는 그 사람이 다시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이 그립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암만 애를 써도 그때의 그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없다. 친구의 말대로 추억은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 어리고 순수했다. 그리고 더 열정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냉혹한 현실을 알아갈 때 마다 우리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는 걸 안다.
저마다의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시절 영악하지 못한 내가 있었고 주체하지 못할 뜨거운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무모하다.
첫사랑은 극적이다.
응답하라 1997에서 나오는 나레이션이다. 엄청난 공감을 불러 일으켜 많은 블로그와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대사였다. 과거는 지금보다 어설프고, 많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나름대로 열심히해보겠다는 열정과 노력이 기특하다. 그때가 아니라면 할 수 없었던 것들. 지금 다시 한다고 해도 그때와는 다른것들. 추억 속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