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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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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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폭풍의 언덕
사랑과 배신이라는 주제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여 설렘과 긴장을 안겨주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다 자신의 감정에 이입시키거나 상상하기에 충분한 소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 고전 중에서도 잔혹한 복수, 배신, 애절함이 한데 뭉쳐있는 작품이 바로 이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미국드라마 에서 여자주인공이 폭풍의 언덕의 한 구절을 읊는 장면이 나와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마음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은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으로 고상하고 우아함을 담고 있기보다는 격정적이면서도 솔직하게 주인공들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역동적인 스토리구조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액자식 서술구조로 이루어져 록우드의 등장을 시작으로 가정부 넬리 딘에게 폭풍의 언덕의 비극적인 과거사에 관해서 독자도 록우드와 함께 듣게 된다. 이야기는 히스클리프의 사랑, 캐서린 언쇼가 어릴 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지로 잠시 다녀오게 된 언쇼는 선물대신 까만 히스클리프를 주워오게 된다. 집안사람들은 처음에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캐서린은 결국 히스클리프와 가장 친하게 지내게 되고 언쇼는 그를 끔찍이도 아꼈다. 그로 인해 어리던 힌들리 언쇼는 자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모두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히스클리프를 심할 정도로 학대하지만 그는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이 후 캐서린이 에드거 린턴과 사이가 좋아져 히스클리프에 대한 마음은 숨긴 채 현실적으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서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히스클리프는 3년간을 잠적, 그 사이 캐서린은 에드거와의 결혼을 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진정시켰지만, 다시 돌아온 그로 인해 폭풍의 언덕에 대한 복수가 시작되어 힌들러 언쇼, 에드거 린턴, 캐서린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복수는 캐서린과의 엇갈린 마음과 그녀를 가져가버린 에드거에게의 복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험하게 대한 힌들러에 대한 철저한 복수이다. 사랑을 이용한 복수를 꾸미는 그는 정말로 악마의 탈을 쓰고 돌아와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고,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는 중에도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다 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도 끝내 세상을 떠난 캐서린에 대한 차마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으로 말년에 미치광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에게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의 히스클리프 역시 처음 언쇼가에 들어왔을 때는 선한 면을 지녀 언쇼에게 어여쁨을 받았지만 후에 그가 저지른 행동들은 악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캐서린 역시 에드거와의 결혼을 결정할때도 자신의 이익과 체면치레 등에 의해 결정하는 장면에서 악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에서 히스클리프를 악마, 독한 놈 등으로 비난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 역시 찬찬히 내면의 악함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는 좀 더 방법이 직설적이고 극단적이었을 뿐, 마찬가지의 악마가 조용히 숨죽어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양분으로 자라난 질투라는 씨앗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키워 낸 히스클리프, 캐서린에 대한 그의 마음이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때의 그의 고통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이다. 그의 성장과정을 읽었다면 단순한 복수극에 지나지 않는 소설이라는 평가도 할 수 없으리라. 선과 악의 구분은 어찌 보면 대중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평가라고도 보여 진다. 악하고 선한 것에 대한 우리의 갈등과 판단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지만 나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악,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에 선이라고 하는 것처럼 선악의 기준은 남에게 피해를 입느냐, 아니냐에 따른 것이라 보여 지고, 현재적 기준으로서는 히스클리프는 악의 입장에 서서 읽혀지고 있다는 것은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 확고한 자신만의 선과 악의 기준점을 세워 소설을 읽고 느끼는 것도 이제는 더욱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