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의 아이들-소망하는 아이들
처음 책 목록을 받아 보았을 때는 ‘이 책들이 다 무슨 내용인가’ 싶은 생각뿐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검색을 해보니 「교사와 학생사이」 빼곤 대여할 수가 없었다. 그 책을 가지고 돌아와서 읽는데 그 책이 주는 감동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생각건대 그 책은 지금의 교육현장과는 조금 괴리된 감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러면서 좀 우리네 정서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책을 접고 서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단 모든 도서를 읽어보고 가장 마음이 끌리는 책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사실 요즘 3학년이라 부쩍 바빠진 느낌에 뭔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있어서「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서점에 가자마자 그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특급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책답게 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든지, 행동해야할 지표를 제시해 주는 책 이었다. 그렇지만 뭔가 도덕교과와는 연관성이 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도덕교과에 의미 있는 책을 찾아보자는 마음에「교실 밖의 아이들」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교실 밖의 아이들’이란 세상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소망하는 아이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상담지도교사의 마음을 공유하는 동시에 ‘나는 어땠었나.’라는 생각에 학생의 마음 또한 느껴지는 이중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 아동심리학을 배우고 특수아동에 대한 교육을 받은 영향 때문인지 친숙한 단어들이 눈에 띄고 관심이 갔다. 1학년 실습 때 나는 내가 맡은 2학년 교실에서 ADHD아동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사실 그 때만해도 아무 것도 몰랐던 터라 ADHD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여러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근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심을 받는 것에 쑥스러워 하면서도 굉장히 기뻐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아침시간 지도를 맡아서 여러 아이들에게 돌아다니다가 왼쪽 창가 세 번째 줄에 앉은 남자아이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그리고 “안녕? 난 새로 온 교생선생님이야. 오늘 아침에 문제지를 푸는 시간인데 우리 같이 풀어볼래?”라고 말을 건넸다. 알았다거나, 해보겠다거나, 어렵다거나, 잘 못한다와 같은 말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 아이는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아예 못들은 것 같이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풍선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소음을 내고 계속 딴청을 부렸다. 또한 친구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커터 칼을 가지고서 그 친구에게 위협을 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굳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선 다른 교생선생님들의 도움을 얻어 그 아이를 겨우 진정시켰다. 방과 후 교생선생님들과 담임선생님이 모여 앉아 학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했다. 담임선생님은 어두운 얼굴로 실은 그 아이는 심한 ADHD아동이고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매일 아침 먹어야만 그나마 나아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큰 일이 났다고 달려오는 바람에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제 그 아이가 오늘은 바람을 불었다 삼켰다 해서 호루라기 소리를 내는 장난감을 가져와서 아침 내내 시끄럽게 하자 뒷자리에 있던 남자아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장난감을 뺏어서 화장실에서 칼로 다 잘라서 휴지통에 버려버린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큰소리로 울고 벽에 머리를 박고 유리창을 주먹으로 때리려는 것이었다. 그런 그 아이를 상대해 주는 친구는 없었고 그 아이는 급식실 에서도 쉬는 시간의 교실에서도 늘 혼자였다. 고작 1주일짜리 실습이었는데도 나는 ‘왜 내가 배정받은 반에 이런 애가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성인이면서, 교사이면서도 그 아이를 슬슬 피해 다른 아이들만 가까이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그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ADHD가 무엇인지, 왜 그러는지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그 아이를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이 책에서도 ADHD아동이 등장하는데 처음엔 이 교사도 당황하지만 침착하게 문제행동의 원인을 파악해나가고 해결방법을 모색해 나간다. 그러면서 자기 스스로도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보더라도 무턱대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참아줄 것은 참아주고 가르쳐 줄 것은 확실하게 가르쳐 주려 노력한다. 여기서 아이의 행동 수정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행동 수정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특히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만약 그 때, 담임선생님께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무섭다고 이야기 할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다고 찾아보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번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떠실지 이야기를 해보았다면 선생님의 마음에도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내가 고작 그 아이에게 해준 일이란 마지막 날 점심에 밥을 빨리 먹고 다 나가서 놀자고 내 손을 끄는 아이들을 두고 혼자 남아 밥을 먹는 그 아이를 기다려 교실로 데려와준 일 뿐이다. 그 때 그 혼자가 아니어서 안심하는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 나는 어쩜 그리도 잔인한 일을 한 것일까라는 후회가 새삼 느껴진다. 이렇게 담임선생님이나 주변의 어른들이 아이를 내버려두고 피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자 나서지 않는 행동은 어쩌면 아동방임에 해당된다고도 생각된다. 모든 아이들은 주변으로부터 사랑받고 애정관계를 형성할 권리가 있다. 이 것은 주변의 어른들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가능한 일이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일전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이었고 성적은 중위권정도였고 특별히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다만 부모님이 집에 늦게 들어오시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대신 아동센터에 보내진 것이었다. 처음 그 아이들을 마주대했을 때 그 아이들은 나를 경계하고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슈퍼에 가서 무엇을 사먹을지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컴퓨터를 할지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원래 학습 지도를 해야 하지만 나름대로 정서적인 문제에도 도움을 줘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단 그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막지 않고 다 들어보았다. 연예인 이야기, 자기 반에 이상한 애 얘기, 담임선생님이나 다른 학교 선생님이 싫다는 얘기, 센터 담당자 선생님이 싫다는 얘기,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무능함 등 거의 부정적이고 세상에 반항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솔직히는 그냥 혼내주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말없이 들어주고 “그래 ? 그렇구나.” 정도로 동의해 주었다. 자기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자 16살이나 된 그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문을 잠가놓고 불 끄고 없는 척 하곤 하던 아이들이 자기들 간식을 몰래 나눠주며 킬킬 거렸고,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하고 동의를 구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수업태도가 좋아졌다거나 성적이 좋아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때 깨달은 바가 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 행동수정이 어렵고 교사를 불신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들조차도 교사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그 아이들에게 조금만 개인적인 관심을 보여주면 금방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교사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요즈음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외, 학원 남들보다 좋은 교육 이런 것이 아니라 본래 가장 중요한 것인 교사의 사랑, 부모님과 가족의 관심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이 들면서 또한 학생으로서의 나의 마음이 교차했다.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 얌전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무난하게 중학교에 올라가서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시험을 치러 평범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때와 비슷한 성적으로 졸업을 해서 교육대학교에 왔다. 앞으로의 나의 삶은 아마도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임용고사를 치러 교사가 되어 평생을 몸담을 것 같다. 요즘 이 문제가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하고 있다. 너무나 평범한 삶, 어찌 보면 여유로운 자의 교만하기 짝이 없는 소리일거라는 생각도 자주 든다. 그렇지만 솔직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항상 스스로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우수한 학생이니까, 난 학창시절을 잘 보냈으니까 내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을 잠시 의심해 보게 한 것이 이 책이다. 물론 이렇게 특별하거나 심한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할머니 병 수발을 하셔야 했던 부모님 대신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침엔 동생을 깨워서 어머니가 해두고 간 것을 데워서 먹여서 학교 데려가고 점심은 급식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내가 만들어서 동생까지 함께 챙겨야 했다. 그리곤 어린 동생이 학교 알림장을 빼먹기라도 한 날에는 담임선생님께 항상 전화를 했다. 또, 매일같이 잊어버리고 오는 동생 때문에 방과 후에는 동생 교실 창문에 매달려 칠판에 쓰여 있는 알림장을 베껴오기도 자주 했던 것 같다. 덕분에 동생과 나는 지금도 우애가 깊고 다른 남매들에 비해 사이가 굉장히 좋지만 그 당시에는 나도 꽤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가장 부러운 것은 옆집 사는 예인이네 어머니가 매일같이 딸이 하교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집에 오면 짜장라면이나 직접 구운 피자랑 우유를 준비해 두는 것이었다. ‘나도 엄마가 집에서 간식도 해주고 빵도 구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부모님 모두 교직에 계셔서 항상 아침마다 출근해야 하고 5~6시가 되어야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꾹 참았지만 항상 내 어린시절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사실 내가 조금만 더 의지가 약했거나 동생이 없어서 나 혼자였거나 했다면 나도 비뚤어지고 학교에 안가겠다고 떼를 썼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그런, 나름대로 어린아이에게는 힘든 시련을 겪어낼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아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보면 어린시절에 부모님과의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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