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사이를 읽고 - 도덕과 교육이론
교사와 학생사이를 읽고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는 거지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때 까지 교사라는 직업은 죽어도 되기 싫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이유였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교사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교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듯이, 내가 혹시라도 가르치게 될 학생들이 나를 똑같이 여길 것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 자존심 상하기도 싫었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틀에 갇혀버린 교사라는 직업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유로 교대에 들어와서 아이들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실습을 나가서 아이들을 직접 대해 보니 교사가 꼭 안 좋은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한 개인으로서 존중해주고 대할 때 아이들은 바로 넘치는 사랑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이 될 준비를 하면서 기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1장에 나오는 교사들의 이야기에서는 젊은 교사들의 불만, 실망, 절망이 나와 있었다. 내가 교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현실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하면 교육제도가 변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교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오늘 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2장에서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여기서는 바람직한 사례를 이야기 해주면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 했을 때, 이론보다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사소한 흥분, 매일 벌어지는 갈등,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위기와 같이 숨 돌릴 사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을 효과적이고 인격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학교생활에서 교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사례로 제시된 ‘폴에게 쓰는 편지’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담임선생님이 일기에 매일 답장을 써주셨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일도 상처가 될 수 있는데, 이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것에서 아이들은 큰 위로를 받는다. 나는 아침조회시간에 조금 늦었는데 선생님께서 맨 뒤로 가서 줄을 서라고 말한 것에 마음이 상했었다. 이를 일기로 쓰자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하시며 나를 이해해 주시는 답장을 써주셨다. 답장을 보고는 금방 위로가 되었다. 요즘은 일기 검사에 대해 인권침해를 내걸고 찬반의견이 분분한데, 교사의 비밀보장이라는 책임 하에서 일기를 검사하는 것은 맞춤법을 바로 잡아주는 작은 것에서부터 아이들과 깊은 곳까지 의사소통 가능한 중요한 수단이라고 본다. 아이들을 대할 때에는 비난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지적, 말을 아끼며 공감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를 읽고 객관적 입장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 다고 생각했다. 엄격한 규칙보다는 아이의 기분을 더 중요시 여기며 존중해 주는 부분에서 아이들이 반감을 갖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다는 사례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규칙이라는 틀에 대해 꼭 지켜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 규칙들이 결국에는 아이들을 위해 존재 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자신을 풍자하는 그림에 대해 교사가 화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넓은 바다에 돌멩이를 던져도 아무 일 없는 듯이 받아줄 수 있듯이 교사의 마음 그릇이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례에서 니나라는 아이의 말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었을 때 니나가 달려와 꼭 껴안았다는 부분을 보고 아이들은 너무나 솔직하게 다가와 준다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했다. 내가 아는 아이 중에 여섯 살짜리 지우라는 아이가 생각났다. 친구처럼 그림도 그려주고 이야기도 들어주었을 뿐인데 나를 너무나 좋아해줘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나를 항상 기다리고 나를 보면 너무나 꾸밈없이 나를 좋아해주고 웃어준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이 구나 싶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예의상, 형식상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웃어봤지, 상대방에게 언제 이렇게 깨끗하고 솔직한 웃음을 지어봤는지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넘치는 사랑을 준다. 너무나 감사하다. 니나의 이야기나 지우의 이야기처럼 아이들은 존중받고 이해받으면 그 이상의 사랑을 아낌없이 준다. 아이들이 부정적으로 나를 대한다면 문제는 바로 나에게 있음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울면서 달려온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 따지지 않고 괜찮다고 해 주자 아이가 미소 지으며 돌아간 사례에서는 슬퍼할 때 말로 위로하는 것 보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우는 동생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맘 놓고 울어도 괜찮다 해주며 편히 울 수 있도록 코푼 화장지는 버려주고, 새 화장지를 뽑아 주었다. 동생은 더 서럽게 울더니 안정을 되찾고는 엄마와 다투어서 속상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금방 맘이 풀려서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귀납적인 것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여러 경험을 통해 상대방을 위하고 이해하는 힘을 느꼈다. 나보다 남을 더 위하고 그 순간에 남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준다면 아이들 역시 금방 위안을 받게 된다. 학생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 공격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래? 그럼 내 표정을 좀 더 부드럽게 해 바꿀게.’라고 설명 대신 수용을 함으로써 대화의 흐름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잘못 했습니다’, ‘감사 합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아이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가장 큰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우월함을 과시하는 행동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최선을 추구하는 교사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의 과거 이야기나 먼 미래를 들먹이지 않는다. 현재만 다룬다. 곤란을 겪고 있는 아이의 지금 이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3장 아주 나쁜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교사가 아이들을 대할 때 좋지 않은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을 읽는 동안 놀란 것은 이러한 나쁜 상황을 한번쯤은 내가 다 겪어 보았다는 것이다. 자리에 늦게 앉는 아이에게 꾸짖은 사례를 읽고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업시간에 앉아있는 나의 자세가 잘못되었다고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매로 내 몸을 밀어서 몇 번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다시 넘어졌던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부반장인 나에게 심부름을 잘 하지 못했다고 뺨을 때린 적도 있다. 그 당시에 나는 내가 왜 선생님께 혼나는지 알지도 못했다. 험담에 관한 사례에서도 합창단을 탈퇴하고 싶다고 담당선생님께 이야기 하자, 키도 작은 것이 목소리도 작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한 말을 듣고는 울었던 기억이 있다. 백번을 양보해도,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아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행위는 비교육적이다. 심리과정은 조롱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조롱은 미움을 키우고, 복수심만 부를 따름이다. 교사는 외과의사와 같아서, 칼을 아무렇게나 휘둘러서는 안 된다. 한 번 상처가 나면 평생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3장을 읽는 도중 선생님은 아무나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식, 이론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준비가 된 사람이 선생님을 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현재 교육대희 대학생이 받는 수업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크다. 현재 우리가 교육대에서 받는 수업은 교사의 인격과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듯하다. 아이들을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따져서 분석하고 그것을 달달 외워가며, 그저 교사가 되었을 때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져라,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매사에 임하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치관이 뚜렷한 교육대학생을 원한다. 수업 또한 이것저것 비판해보고 생각해보고 이의를 제기하고······. 물론 교사가 되어서 아이를 바로 알고 뚜렷한 주관과 적극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방법, 이해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배워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동기 유발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학습동기유발이란, 사범대학에서 공부하는 절차상의 과목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사랑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과정이다. 교육이라고 일컫는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사랑에 담겨 표현된다.
4장 적절한 의사소통에서도 의사소통에 대한 많은 사례가 제시되었다. 비난하고 창피를 주는 말, 설교하고 훈계하는 말, 명령하고 지시하는 말, 타이르고 꾸중하는 말, 조롱하고 무시하는 말, 위협하고 매수하는 말, 진단하고 예언하는 말과 같은 식의 대화 방법들은 아이들을 야만스럽게 하고, 저속하게 만들고, 비인간화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는 교사는 아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최악의 상황에 있는 교사는 아이의 성격과 인격에 대해 평가하려한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교사의 부정적인 주관을 갖고 아이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가 조건에 따른 행동이고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유능한 교사는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을 의식하며 존중한다. 항상 인내심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늘 진심어린 마음으로 교육에 임한다. 그는 진지하게 대응한다. 감정에 일치하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귀찮을 때 귀찮다고 말한다. 인내를 가장하지 않는다. 불쾌할 때 기분 좋은 척하며 위선 떨지 않는다. ‘무척 잘 산다’는 말이 있다. 이는 척이 없어야 가장 잘 산다는 말이라고 한다. 겸손한척, 착한 척, 우아한 척, 똑똑한 척, 깨끗한 척······. 사람들은 참 많은 척을 하고 산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수한 척을 해봤자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모욕을 주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령을 하지 않는 것도 아이들의 저항을 줄이는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율성을 침해당하면 분개하지만, 교사가 존중해주고, 자존심을 지켜주면, 아이들의 반발심도 수그러든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는 나의 동생이 학교생활에 대해 반발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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