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보고서 - 제주도 현대사를 읽는다
처음 제주도 유적지 답사를 하러 갈 때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뜨고 초등학교 때 소풍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일 집, 학교, 알바라는 일상생활 속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것 같기도 했다. 제일 먼저 알아볼 곳은 관덕정이였다. 관덕정이라하면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을 받기도 하면서 제주에 살면서 관덕정 앞을 많이 지나다니긴 하지만 정작 관덕정을 따로 보러가거나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였다. 내가 알고 있던 관덕정은 군사훈련장이라고 들어서 그 안은 굉장히 크고 웅장할 것 같았는데 막상 보고나니 TV에서 보던 옛날 건축물과는 별반차이가 없었다.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왜 우리가 생각을 하던 기존에 건축물과 비슷한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 이유는 관덕정을 복원할 때 제주도의 기후 및 환경을 잘 반영해서 그 지역 특성에 맞게 복원을 해야하는데 무작정 토목업체가 마구잡이식으로 지어서 그렇게 된 것이 였다. 또한 관덕정을 복원 전에 관덕정터 밑에 탐라시대에 건축자제들이 나왔는데 충분히 역사적으로 필요한 사료인데 불구하고 시간단축을 이유로 막무가내로 복원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였다. 이 말을 듣고 충분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료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과 이익 때문에 땅속에 영영 묻혀 영영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음 한쪽으로 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관덕정은 예부터 제주도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이 많이 발전도 하고 바뀌어서 예전 관덕정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장소인 항몽유적지로 발길을 옮겼다. 항몽유적지는 아마도 초등학교때 한번 가봤을 법도 했을 법도 했지만 내 기억으론 처음 보는 곳이 였다. 항파두리 항몽유적지는 고려무인 삼별초군이 마지막 보루였던 항파두성이다. 항몽유적지 전시관 내부를 둘러보는데 그곳에는 큰 그림으로 몽골이 제주에 쳐들어 올 때부터 토벌될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 속에서 제주인들은 겁에 질린 모습이였고 몽골인들은 그런 제주인들을 괴롭히는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저번에 국제학술대회때 들은 바로는 몽골인이 제주에 들어와서 제주의 삶은 전보다 윤택해졌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몽골의 마 산업이 제주에 정착해 제주사람들의 삶의 질은 더욱 향상이 되었다는 것이 였는데 전시관 그림에서와는 내가 알던 내용과는 다르게 묘사되고 있어서 역사의 관점은 각각에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풀이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세금부터 시작해서 출국금지령까지 내렸던 정부가 일제시대때 한국을 지배했던 일본군보다도 제주인들을 더욱 더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충사는 과거 의병항쟁을 기념하기위해 세운탑과 의녀반수김만덕의임묘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중학교때 학교에서 자주 왔었던 곳이라서 친근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단지 놀러왔다는 생각만을 해서 그런지 그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만덕관은 내가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 같아서 한번 들어가 봤는데 내가 만덕관에 전시된 물품을 보면 왠지 김만덕일생을 표현한 그림은 제외한 모든 물품은 그냥 제주에서 사용하고 있던 물품을 가져다 놓은것 같아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항몽유적지 전시관이나 막덕관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을 위한 전시관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와 닿았고 이러한 전시관은 그 당시 역사와는 무관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로 하여금 전시관을 찾는 이들에게 전혀 다른 사실을 제공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역사를 재조명할때는 역사가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 모두에게 정확한 사실만을 그려내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모충사 답사를 마치고 우리는 과거 일본군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제주에 진지를 만들었던 곳으로 향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별도봉길을 걷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옆에 보이는 구멍이 과거 일본군진지라고 말씀하셨다. 입구는 나무로 막혀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가면 일본군이 사용했던 진지인지도 모를 만큼 그냥 방치해두었다. 그런데 여러 진지중에서 몇군대는 나중에 4·3사건때 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고 교수님께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난 학기때 4·3평화공원때 보았던 다랑쉬굴이 생각이 났다. 4·3사건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기도 전에 다시한번 처참한 4·3사건의 자리 곤을동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제주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사건 때 잃어버린 곤을동마을은 그때의 처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현재는 그저 올레길18코스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곤을동 입구에는 제주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 2002년 표석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2002년 당시 표석에는 초토화 작전이 군인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표기하지않아, 여러 사람들에 반발로 인하여 표석을 세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에 군인에 의해 곤을동이 초토화되었다는 문구를 삽입한 후, 2003년 4월 3일 표석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4·3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실수를 숨기고 정당화하려고 하던 현실을 느낄 수가 있었고 아직까지 우리가 알던 역사또한 승자에 의해 거짓으로 기록된 사료들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곤을동을 한번 둘러본뒤 조천만세동산과 제주해녀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 두 곳도 중고등학교 시절 자주와봤던 곳이라서 익숙했다. 조천만세동산은 항일운동을 육지에서만 일어난게 아니라 제주에서도 일어나 다양한 민족해방운동이 모태가 되어 항일운동의 일선에 나선 제주 시민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될수 있었던 중요한 운동이였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현장답사는 내가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알 수가 있어서 정말 보람된 답사라고 느꼈고 아직 우리주변에는 잘못된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러한 역사를 바로잡는데 앞으로 역사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번답사가 ‘제주 현대사를 읽는다’라기 보다는 ‘제주 과거아픔을 읽는다’로 볼 수 있는 현장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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