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도가니
지은이 : 공지영
펴낸이 : 고세현
책을 처음 펼쳐든 순간 왠지 영화 같다는 생각에 많이 설레었다. 한 남자가 허름한 차림에 썩 좋지 않은 중고차를 몰고 시골로 덜컹거리며 내려간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안개 가득한 지방의 한 작은 도시는 음산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남자의 도착에 맞춰 안개 속에서 기차가 한 아이를 치고 지나가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다. 아이의 움켜쥔 주먹에는 단서처럼 무언가를 적은 꼬깃꼬깃한 쪽지가 쥐어있다.
사실 첫 장면부터 허름한 모습으로 각인되어버린 소설 속 주인공 강인호라는 인물부터가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이 될 만큼 강하지가 못하다. 이것저것 하다 사업마저 망치고 아내의 친구 알선으로 마지못해 시골의 청각장애인 학교 기간제 교사로 온 그는 벼랑 끝에 선 인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변두리에 서 있어 보인다. 엄청나게 강한 악당들 속에서 연약한 아이들을 구할 영웅으로 변신하기에는 너무나도 약했고 그 스스로가 번민과 고뇌 속에 갈등하는 한명의 인간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시설에서 그 시설의 책임자이며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교장과 행정실장이란 사람이 자기 학교 아이들을 수없이 성폭력과 구타로 유린했다는 사실은 끔찍하기만 하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거리낌 없이 르포처럼 밝히고 있는데 믿고 싶지 않은 심정 때문에 또 외면하고 싶은 마음,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히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성폭행해도 ‘아, 그런 일이 있구나’하는 정도로 흔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그런 뉴스가 아주 가끔 신문이나 인터넷을 타고 귓가에 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또 다시 놀라고 분노하는 것도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성폭력과 구타를 당하는 사실을 접했을 때에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싶었다. 그러면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가슴은 강인호가 되었든 서유진이 되었든 누군가 대신해서 완벽히 복수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끔찍한 사건의 핵심은 그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문제였기 때문에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 해결될 줄로 알았다. 그래서 강인호라는 새로 부임한 선생이 그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강인호의 대학 선배이자 인권센터 간사인 서유진이 그 사건을 알게 되었을때에 내용은 이제 거의 다 끝났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책의 분량이 반도 더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어떻게 아직도 쓸 말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 놀라며 참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가해자인 교장과 행정실장, 박교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옹호하는 시청과 교육청, 경찰서, 교회 등으로 뻗쳐 있었다.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기관들 속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시청, 교육청, 경찰서에 고발하는 부분에 왔을 때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완전히 끝날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외면하고 믿지 않으려하는 얽히고 설킨 사회가 벽처럼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벽에 대항하기 위해 약자의 편에서는 언론을 통해 그 사건을 알리게 되고 그 벽을 허물려는 힘을 모으고 있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다시 흘러간다. 결국 반전을 맞이한 것처럼 알게된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벽은 굳건하다는 사실이다.
국회의원의 성추행, 교사의 강간, 정신지체아에 대한 양부의 성적 유린 등 간간히 나왔던 텔레비전 속 뉴스들. 그것을 보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서도 그래 이제 세상에 밝혀졌으니 잘 해결되겠지 해왔던 막연한 기대 속 사건들이 사실은 그냥 묻히고 있었을 뿐인지 모른다. 잠깐 크게 이슈화 되었던 사건들이 시간이 흐르며 대중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을 때 그들만의 우리란 테두리 속에서 다시 구체화되어 떳떳이 그들만의 왕국에서 활개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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