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독교 탈식민화 운동으로서의 에큐메니칼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과 아시아기독교사가 과연 얼마나 연관성이 있을까?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들었던 의문이다. 나는 지난 학기 현대선교학 수업을 들으면서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형성과 그것의 오늘날까지의 진행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배웠다. 이러한 선이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 어쩌면 서구중심으로 서술된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에 대한 선이해가 사고의 틀을 제한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 에큐메니칼 운동과 아시아기독교사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를 점점 읽어나가면서, 어떠한 지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아시아기독교사가 연관성을 갖는지 깨닫게 되었다.
사실 우리 수업에서는 지금까지 주로 아시아 고대 기독교사에 대한 부분을 다루었다. 그래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아시아 기독교사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던 측면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커리큘럼 상 우리의 수업은 앞으로 사비에르의 선교 이후, 즉 근대 기독교의 아시아선교부터의 역사를 다루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 수업에서 아시아기독교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서구 교회의 아시아 선교와 그로 비롯된 문제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양측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미 수업에서도 익히 다루었듯이, 기독교는 본디 유럽의 종교가 아니라 아시아의 종교이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탄생한 지역 자체가 유럽이 아닌 고대 근동지방이며, 탄생 후 첫 천년동안은 유럽보다는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기독교가 더욱 융성했다. 기독교가 서구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이 C.E. 1400년경에 이르러서이니,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독교와 서구를 동일시하는 관념’은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후기에 형성된 것이다. 나이난 코쉬,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I』, 김동선, 정병준 옮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6), 27.
안타깝게도 과거 융성했던 아시아의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C.E. 1500년경에 이르러 단절되고 말았고 오늘날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ibid., 34.
하지만 J.C.잉글랜드, T.V.필립, S.H.마펫, K.M.파니커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의 노력 끝에 그 역사가 오늘날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기독교 역사의 한 조각에 불과한 역사적 발견으로 단순히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서구 독점적인 종교가 아님을 밝히는 중요한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반드시 서구화된 형태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음을 인식하고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1500년대에 이르러 아시아 지역에 대한 서구교회의 선교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서구의 기독교는 이미 오래 전에 그레코-로만 문화를 흡수하였고, 초기 기독교의 모습으로부터 상당히 변형되었다. 서구 기독교는 그 구조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유럽화되었고, 심지어 로마제국의 기능의 일부를 이어받기까지 했다. 이처럼 기독교는 서구에서 국가종교의 지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에 전파되는 과정 속에서 군사력과 정치적 지원을 등에 업었고, 제국주의적 형태로 전파되었다. 기독교의 선교가 바울적인 모델이 아니라 침략적 개종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격적 방식의 복음화는 동정심, 겸손, 그리고 이해심에 근거를 둔 복음의 본래적 성질에 어긋난다. 본질적인 성격으로부터 이탈한 유럽식 기독교는 결론적으로 아시아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데 실패했다. M. D. Dabvid, “The Nature of Western Colonialism - A Handicap to the Growth of Christianity in Asia”, Western Colonialism on Asia and Christianity, Himalaya Publishing Company, Bombay, 1988, pp.2-3, 나이난 코쉬,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I』 36-37에서 재인용.
이후 근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서구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아시아에서의 기독교 전파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긴 하였으나, 여전히 대다수 지역에서는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선교사들, 즉 서구교회와 현지인, 즉 아시아 교회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힘이 개입되어 있었다. 그러한 구도 아래에는 식민지적 태도, 즉 인종차별적 태도가 복합적으로 숨어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이는 선교사는 돈을 지불하는 주인으로, 토착인은 종으로서 인식되는 일반적인 힘의 구조로 작용한다. 나이난 코쉬,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II』,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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