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감상문 홍길동 그가 필요하다 율도국을 꿈꾸며
-율도국을 꿈꾸며-
며칠 동안 감상문을 쓰기 위해 끙끙 앓고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고, 오늘도 역시 아침부터 고심을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저 잡다한 생각들만 오가고 있을 뿐이었다. TV를 켜고 뉴스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번뜩 홍길동이 생각난 이유는 무엇일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돌아다니며 부패한 관료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던. 늘 그랬지만 뉴스에는 온통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사건들과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부패상에 관한 것이었다. 평소 정치나 사회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도 무언가 모순으로 가득 들어찼다는 것과 썩어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은 누가 보아도 확실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사건과 정계의 부패는 계속 되는 것인가 보다.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홍길동전이 쓰여졌던 그 당시에도 그랬을 것이다. 홍길동전이 지어졌던 시대는 임란 이후,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였고 양반들의 횡포가 극에 치달았을 때였다. 특히 적서차별에 따라 서자는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시대였다. 홍길동도 역시 사회의 모순에 휘둘려 마음 고생이 극심했다. 홍길동은 판서 집의 서자로 태어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야말로 당시의 제도 속에서 괴로움을 겪으며 천대받던 인물이다. 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체격과 힘을 타고난 홍길동은 결국 집을 떠나고 ‘활빈당’을 조직한다. 그리고는 백성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힘들게 거둬들인 곡식을 세금으로 거둬들여 창고에 빼곡이 쌓아놓고 떵떵거리며 놀고먹는 양반들을 혼내준다. 그리고 곡식은 고스란히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이런 식의 대목이 여러 번 나오는데 얼마나 통쾌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홍길동은 마치 양반과 관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춘귀몰하며 그들을 피해 다닌다. 당황한 탐관오리들은 홍길동을 잡아보려 애를 쓰지만 그들은 홍길동 앞에 어리석고 멍청해 보이기만 할뿐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홍길동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몇 년 전부터 부쩍 한숨이 늘어난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하다. 이렇게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돈 많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잘 살다가 곱게 늙어서 죽고,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 이런 사람들한테 시달리다가 최후를 맞는다는 사실이 너무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홍길동 같은 과거 소설 속의 영웅을 찾고 있다는 것이 조금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방금 뉴스를 보던 나의 생각은 정말 간절했다. 저런 사람들 좀 잡아다가 묶어 놓고 빼돌린 돈 같은 거, 다 찾아다주지 않고 뭐하냐고. 평소 같았으면 저승사자나 귀신을 들먹이며 그 기름진 사람들 좀 잡아가라고 했을 텐데.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주식을 하는 기업의 부사장이 회장인 아버지 몰래 150억 가량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리 멀지 않은 친척집의 일이었다. 집 앞 빌라의 방에 현금으로만 채워놨는데 정말 어마어마했다. 항상 남의 일이고 먼일로만 보아왔던 것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그 부사장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돈이 아닌 그 큰돈을 그런 식으로 혼자 쓰려고 했는지.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돈 많고 연줄 있는 사람들은 교도소에 들어가서도 넓은 독방 쓰면서 편안하게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이럴 때 홍길동이 있었으면 이 사람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소설 속의 홍길동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슈퍼맨 이상의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는 둔갑하는 것도 자유 자제이며, 축지법을 써서 십리 길도 한걸음에 갈 수 있고 원하면 분신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예전에 어떤 글에서 우스갯소리라며 홍길동은 사실 범죄자라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함부로 남의 집에 예고도 없이 들어갔으므로 가택침입죄, 자기 물건이 아닌 재물들을 탈취해 갔으므로 절도라는 등 홍길동의 범죄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엄연히 따져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고 도적 떼의 괴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홍길동이 단지 강도라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홍길동이 털어 온 집을 살펴보면 아마 모두 뒤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또 그 많은 재산과 곡식들이 정녕 그들의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탈취한 것들을 홍길동 자신이 가지지도 않았으며 단지 원래 주인들에게로 돌려준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다. 홍길동을 범법자로 내몰기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은 홍길동에게 당한 사람들은 충분히 당하고도 남을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재산 빼앗기고 골탕먹은 양반들은 오히려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홍길동을 잡을 수 있을까 이만 부득부득 갈았을 것이다. 그건 현재도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억대의 검은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고 수갑을 찰 때도, 그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운이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부패가 날로 심해지는 것 같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공상이겠지만 홍길동이나 홍길동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꼭 활빈당에 들어가고 싶다. 뉴스 보도를 듣거나 신문 기사를 읽다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화가 치밀기는 하는데 나는 사실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세상을 바꿔 놓을 만한 능력과 힘이 부족하다. 홍길동은 소설 속에서 무리를 이끄는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해인사의 재물을 탈취할 때에는 재치 있는 지혜를 보였다. 이런 괴수가 있다면 나도 용기가 솟아오를 것만 같다. 활빈당의 일원이 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왠지 가슴이 벅차다. 마치 이미 홍길동이 현세에 나타나 내 눈앞에 있는 양.
홍길동전을 읽고 또 한가지 생각해 본 것은 율도국에 관한 것이다. 홍길동이 왕이 되었다는 이상향의 그곳. 조선에서 자신의 갈등 요소가 해결되자 홍길동은 또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율도국이고 홍길동은 그곳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차지한다. 물론 그곳은 조선과 달리 봉건 체제를 탈피한 곳이 아니며 특별한 이상을 실현한 공간도 아니다. 다만 태평한 시대를 유지할 뿐이다. 이곳이 진정 좋은 곳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분명 지금 보다는 한결 평화로운 곳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기존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식에 의한 유토피아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나는 진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몇몇의 힘과 권력에 의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끌려 다니며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쯤 율도국에 살게 될 날이 오게될지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오긴 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는 그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느꼈었다. 세상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던 때였다. 커가면서 뭔가 알게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지고 보니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경제력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내 안에 존재하는 약간의 염세주의가 작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쁜 마음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눈에 많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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