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핑크 플로이드 더 월
서울시 성북구의 한 대학교의 문학수업. 교수가 말한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 취업률을 높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야” 라고. 교수의 목적은 학생들의 보다 많은 취업이다. 그리고 나또한 공부하러 대학교에 입학한 것이 아니었다. 내 자신의 인생이 ‘좋은’대학에 달려있다고 배웠다. 결국 모든 교육의 목표를 입시에 맞춰버렸다. 대학생이 된 후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야 나의 목적을 갖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목적은 더욱 높은 교육을 받고, 많은 것을 접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다. 한 인간의 자아와 더불어 가치관은 그 인간의 평생에 걸쳐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학생들은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갈 시기인 4학년에 접어들어서야 가치관의 혼란과 앞으로의 방향을 잡기 시작한다.
나는 진실로 모든 미래가 대학에 달려있다고 교육받고 들어왔기에 그렇게 믿었다. ‘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내 주변 환경의 문제였다. 우리 사회의 고등학교는 학생들을 대학가는 상품으로, 그리고 대학교는 학생들을 취업하는 상품으로 만들기를 원했고, 실제로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했으며, 지금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상품들을 광고로써 사용하여, 더 많은 상품들을 만들 재료를 모은다. 그렇게 악순환은 반복된다.
영화 ‘핑크 플로이드 더 월’에서는 획일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는 학교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내가 겪었던 대학에로의 획일화된 학생들과 비교될 수 있다. 영화 속 학생들은 모조리 기계로 들어가 똑같은 상품으로 만들어져 상품화 되어 나온다. 내가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중인 상황이다. 바로 작품의 시대인 30년 전의 미국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주인공 핑크는 록밴드의 멤버 중 하나로, 바로 그 미국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은 한 아이에게 어떤 어른도 다가서지 않는다.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선생이 아니다. 부를 가진 록스타 핑크 한 호텔에서 문을 잠금으로써, 세상과 단절되어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으로 인해, 텔레비전으로 세상과 일방적 소통을 하고 그 소통기구를 파괴하고, 다시 그것을 사용하는 동시에, 환상과 마주하고 고통 받는다. 그리고는 결혼에 실패까지 하며, 끊임없는 악몽을 겪는 망가진 인생을 산다. 핏빛 수영장에 멍하니 떠있던 핑크의 부인은 떠났고, 다가오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너무 상처를 받아,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마치 우리의 세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입학한 명문대생의 자살이나, 최고의 외향적 조건을 갖추고 만난 이들의 결별, 문명화된 세상 속에서 늘어가는 자괴감과 우울증, 그리고 보다 나아진 물질적 존재 가운데서 일어나는 개인의 내적 갈등과 연결되는 것이다.
붉은 철문이 등장하고, 그 문 밖에는 당시 사회의 ‘바람직한’ 교육을 받는, 그 획일적인 상품으로써의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잠겨있는 철문을 부수고 주인공에게 돌진한다. 파시스트를 지향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이 속한 사회로부터 잘못된 것이라 교육받던, 당시 사회에 의해 배척받던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따르는 그것의 지배자는 바로 상품을 대변하는 그 록밴드 그룹의 멤버 핑크이다. 한명의 지도자 핑크는 곧 그에게로 달려드는 수많은 핑크들인 것이다. 경찰들은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한다. 민주주의의 정점이자 그 이념을 무기로 한 최고의 승리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그 사상의 본질인 인간을 마치 예전의 적이 그랬듯이 무력으로 억압한다. 사회는 자신의 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유익한 사회구성원, 즉 상품으로 이용할 수 없는 그들을 무참하게 진압하고,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을 구성하는 것들을 스스로 부순다.
작품에서 우리에게 보여 지는 것 중 하나는 ‘벽’이다. 수많은 벽돌로 이루어진 벽 말이다. 주인공은 벽을 부술 수 없었다. 과연 그 벽은 무엇일까? 학교의 교육? 전쟁? 고통스런 자신의 삶? 혹은 자신을 괴롭히는 보이지 않는 벽? 우리는 항상 우리를 막고 있는, 우리가 넘거나 부술 수 없는 벽과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없애기를 너무도 원한다. 언제나 뜻 대로만은 되지 않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거나 막고 있는 그것을 말이다. 작품은 우리에게 말할런지 모른다. 그 벽이 우리를 막고 있지만, 그 벽을 이루고 있는 벽돌들이 사실은 우리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막고 있는 그 벽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곧 자신으로 인해 스스로 타인과 단절된다는 것이다. 사회와 권력은 우리를 벽돌이나 상품으로 버렸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한 실태를 보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벽돌은 무너지면서 끝이 난다. 핑크, 아니면 핑크들이 벽을 부순 것일까? 아니면 벽돌들이 더 이상 벽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일까? 우리는 어쩌면 이미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진정한 구성원으로서의 힘을 어디서 얻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힘을 우리 내면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끊임없이 벽을 두드리는 것은 아마 우리가 자유를 향해 끊임없이 헤엄치는 존재이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전쟁, ‘유익한’ 교육,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넘어서고 싶은 존재인 동시에 우리를 막고 있는 그 벽을 없애고 싶은 존재인 ‘핑크’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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