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독후감
나의 청소년기 학교 생활에 비추어 존경이 갔던 선생님들은 몇 안되고 오히려 나에게 트라우마를 준 선생님들의 쪽이 훨씬 많았다. 선생님들의 편애, 비리, 말도 안되는 설교. 선생님들이 항상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있었다. 너희들이 사회에 나가면 이보다 더 혹독한 말을 들을 것이다. 자기네들은 그래서 사회생활을 얼마나 했을까. 임용고시 붙고 다시 학교로 돌아 온 거 아닌가. 이런 반발적인 말들만 생각이 나지 오히려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설교적인 말들은 과연 진정 나를 걱정하여 하는 말인가라는 의심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청소년기를 지나온 나의 경험에 비추어 책을 읽는 내내 절실하게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으며 내가 교복을 입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학교 울타리 속 현실은 청소년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이 과연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혀줄 청소년을 바람직한 인재로 성장시켜줄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야간 자율 학습을 위해 강제적으로 교실에 남아 않아 있는 청소년들이 많을 것이다. 야간 자율 학습의 희망을 조사하는 설문지에 조차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자율학습을 희망하는가 ? 예/아니요”이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한마디 하신다 “선택하지말고 밑에 이름만쓰고 도장만 찍어서 와”
원하는 대학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통제나 억압쯤은 충분히 감수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반복적인 주입으로 인해 우리 한국 사회의 교육은 본래의 순수한 의미를 퇴색해버린 지 오래다. 대학입시를 위해서 청소년들에게 무한한 경쟁의식만을 심어주며 인간으로서 가지는 개인적인 창의성과 가치 등은 무시해 버린다.
학교라는 틀에 박힌 공간 속에서 교사가 지시하는 사항에 대해 복종하고 순응하기를 강요하고 이러한 엄격한 토에속의 가르침은 결국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인간을 양성하게된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여 비합리적인 기존 체제에 건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의식조차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우리 한국사회의 학교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우리사회의 지배논리에 다루기 쉬운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훈련장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성적과 등수에 의해서 등급을 나누어 판단해버리고 모두에게 더 좋은 성적을 내라며 채찍질하고 다그친다.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학교에서부터 성적으로 일류와 이류로 나누어 담임교사의 무한한 총애를 받는 소수의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소위 말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미운오리새끼마냥 존재가치조차도 인정받지 못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실제로 내가 나온 학교에 경우 공부 잘하는 상위권 아이들만을 위한 반이 있었다. 그들은 특별하게 다루어져 야간 자율학습 때도 그들만은 다같이 있는 교실이 아닌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고, 또 비싼 야식도 나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보통의 나와 같은 학생들은 분개 하였다. 청소년시기부터 차별을 받고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나누어지는 차별적 대우는 결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가르치고 나아가 청소년들이 진정한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교에서부터 불평등과 차별 등을 몸소 체험하며 성장해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나 진정한 우정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채 경쟁의식으로 점철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교장, 교사, 학생으로 이어지는 학교의 엄격한 위계구조는 오랜 시간동안 굳어져 가장 하층에 위치한 학생이 교사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침해할 듯한 행동을 보이기라도 하면 체벌이 주어지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폭언으로 잠재워버린다. 교사의 명령에 학생이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이 그들 집단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존경과 권위는 학생의 자발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입시를 위해서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하더라도 참고 견뎌내야 하며 청소년은 어쩔 수 없이 약자의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학교 생활에 빗대어 떠올려 보면 학교에서의 권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선생님이 나타나도 결코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선생님은 학생에게 굉장한 존경을 받고 있었고 국어선생님께서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셨다. 유일하게 학생입장에서 우리의 의견을 대신하여 소리를 내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어선생님은 어느날 쥐도새도 모르게 전근을 가셨다. 아마 그것은 위에서부터의 조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학교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의 조치.
청소년기는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고 스승으로부터 어떠한 가르침을
받았는가에 따라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라고 본다.
기존의 보수적인 학교 교육체계는 오랜 시간동안 화석처럼 굳어져 변화를 위해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아직 걸음마 수준에 있는 학교 사회복지가 앞으로 학교의 변화된 모습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교사들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변화를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힘에 부칠 것이라고 본다.
교사와 학교 사회복지사 사이에서의 역할 갈등으로 인해서 쉽게 융화 될 수 없는 두 존재는 확연히 역할을 구분하여 학생 인권에 접근하기 보다는 서로 협동하고 자연스러운 연계를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보수적인 교사 집단이 자신들의 역할을 침해당할까 싶어 꿋꿋하게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진심으로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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