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히로시마 1945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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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히로시마 1945를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전쟁에 대한 반감 때문에 무작정 ‘핵무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지 피폭 당시 핵의 위력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끔찍한 피해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과제 때문에 읽게 되었던 이 책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당시의 현황과 이 후 몇 십 년간 지속되고 있는 원폭 피해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원자폭탄 투하 당시를 묘사하면서 늘 언급되는 어구가 있다. 버섯모양의 거대한 불기둥, 말로만 들었을 땐 무언가 경이롭고 아기자기하게까지 들리는 이 묘사 속에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위력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최초의 핵무기라 불리는 이 “리틀 보이”가 폭발한 후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총면적 11㎢가 피해를 입거나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모든 건물의 90퍼센트가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당시 약 25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히로시마에서 7만 명이 초기 폭발로 인해 사망하였으며, 1945년까지 방사능 피폭으로 거의 이와 맞먹는 숫자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원폭 피해를 이런 수적인 내용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당시 피해가 엄청났구나 정도만 느꼈지 아주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거의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는 피해상황과 같은 그 실상에 대해서는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과 ‘핵무기’의 사용 및 개발을 절대적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새삼 이해하면서 깊이 동조하게 됐다.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있었던 피폭 생존자 6명은 폭탄 투하 당시를 거의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섬광’과 ‘붕 떠서 날아갈 정도의 압력’, 6명의 생존자 중 한명은 그 현상을 겪을 당시, 두 행성이 부딪히는 장면이 떠올랐다고 말할 정도이다. 이 신비롭고도 당황스러운 현상 이후 이 6인은 폐허의 현장에 덩그러니 놓인다. 거리엔 시체들이 즐비했고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사람, 신체 일부가 절단 된 사람 등 거리엔 멀쩡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때 다니모토 목사가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한 사람을 손으로 일으켜 세우다가 마치 장갑이 벗어지듯 피부가 벗겨졌다는 묘사가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또한 클라인조르게 신부가 물을 뜨러 갔다가 목격한 온몸이 화상을 입다 못해 피부가 거의 흘러내릴 지경에 이른 군인들, 다리가 부러진 사사키 양의 옆에 있었던 두 젖가슴이 잘려나간 여성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는 눈이 질끈 감겼다.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행히 책 속에 주요인물 6명은 외관상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사사키양이 부러진 다리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절음발이가 됐긴 했지만 폭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다른 피해자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외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외관상으로 멀쩡하다고 해서 원폭의 피해에서 열외된 것은 아니었다. 폭탄 투하이후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구토, 발열, 빈혈, 백혈구 저하 등의 문제가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사건 발생 이후 며칠 후부터 20년, 30년이 지난 후까지도 말이다. 심지어 당시 히로시마에 있던 사람들의 백혈병 발병률이 일반사람들보다 몇 십 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피해가 70년 전 그날에서 멈춘 게 아니라, ‘원자병’이라는 새로운 병으로 재탄생돼서 죽을 때까지 또는 유전되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고한 그들은 왜 전대미문의 폭탄 실험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을까? 혹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에 대한 처벌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일본이 과연 순순히 그 만행들을 접고 전쟁을 그만뒀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극우파가 주도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처벌은 아이러니하게도 연약한 국민이 받게 됐다. 이후 처음부터 없었으면 모를까 이미 공개된 ‘원자폭탄’이란 엄청난 위력을 가진 신종무기는 다른 나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탐욕의 대상이 된다. 여타 나라들은 원자폭탄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해, 세계적으로 자신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앞 다퉈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또 개발한다. 이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3800배 강한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만들어냈고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정도의 엄청난 양의 폭탄을 세계적으로 양성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과거 히로시마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앞으로 과거와 같은 세계전쟁이 일어난다면 단순히 한 지역이 피해를 입는 정도가 아니라 한 국가 또는 지구 전체가 멸망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8월 6일 일어난 원폭투하는 피폭자들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종교를 믿지 않았던 사사키양은 수녀가 되었고, 클라인조르게 신부는 나보다 남을 챙기는 희생정신을 더욱 더 철저하게 실천하게 되었으며, 나까시마 부인은 원래 하던 삯바느질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또한 후지이 박사는 피폭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잊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게 됐고 사사키 선생은 피폭자들의 치료를 전담했다. 그리고 다카시마 목사는 원자폭탄 사용 반대 및 세계평화 운동에 가담하게 됐다. 6명의 이야기 중 다카시마 목사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이는 다카시마 목사가 미국의 각 지역을 순방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미국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이 모습 때문이다. 원폭 피해 때문에 얼굴에 켈로이드 흉터를 가진 소녀들을 성형수술을 시켜주기 위해 미국에 방문한 다카시마 목사는 NBC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된 인터뷰였으나, 당시 미국이 개발하고 투하한 원자폭탄에 대한 잔학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이 다카시마 목사를 마치 혁신적인 과학적 발명과 그 결과물이 위력을 발휘하는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던 운명의 사나이 정도로 취급했다. 또한 인터뷰에 게스트로 출현한 루이스 대위는 당시 원폭 투하 요원으로 있었던 사람으로서 인터뷰에서는 당시 일이 자의적인 일이 아니었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어조로 답했지만 알고 보니 인터뷰 자체보다 출연료에 관심이 있었던 자로 생각만큼의 출연료를 받지 못하자 술을 마시고 스튜디오에 등장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주일미국대사관의 공보원이 본국 국무장관에게 보낸 외교전문을 보면 원폭소녀들을 위한 홍보활동을 하는 다카시마 목사를 미국에 비우호적인 홍보활동을 야기시킬 수 있는 자, 좌파노선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 자로 묘사하며 경계하고 있다. 이 모습에서 미국의 피폭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후 다니모토 목사가 미국 순방강연을 하면서 모은 기금의 권한이 뉴욕시에 넘어가고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갔던 소녀의 사망소식, 그리고 귀국한 소녀들이 자신들이 호기심과 시기의 대상이 된 것을 알고 다니모토 목사의 홍보활동에 반발하면서 다니모토 목사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의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사회적 명망과 지위에 대한 욕심이 기여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좋은 뜻으로 시작했던 일이 치료목적으로 갔던 소녀의 뜻밖의 죽음, 든든한 후원자인줄로만 알았던 노먼 커즌스씨의 배신(?)과 같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인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어 끝이 났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했다.
이 6명의 인물들은 원자병으로 꾸준히 고생하긴 하지만 말년에 그런대로 평범한 생활을 한다. 여기에 나까시마 부인과 다니모토 목사는 피폭자들에게 지급됐던 보상 수당의 도움을 꽤 받았다. 이 보상은 한동안 이루어지지 않다가 1957년부터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1957년 원폭의료법이 통과되어 무료 의료혜택과 매월 수당을 받게 됐고 1975년에는 건강관리수당이라는 또 다른 명목으로 수당을 받게 됐다. 이 수당은 몇 년이 지날수록 액수가 점점 더 높아졌다. 물론 피폭당시 피해와 상응할만한 보상이 있겠느냐만 말년에 꽤 여유롭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체계가 잘 잡혀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