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메탈 자켓을 보고 나서 풀 메탈 자켓 감상평, 풀 메탈 자켓 영화
이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87년 작품으로,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쟁영화이다. 여기서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은 구리로 코팅된 탄환을 일컫는 말이다. 민간용 탄환은 코팅이 안 되어 납으로 노출이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자동화기용 탄환을 뜻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68년 월맹군의 구정공세 때의 상황을 미 해병대의 활약상이 실제 모습 그대로 리얼하게 표현 되었다. 전반부의 전개가 빨라 흥미로우나 후반부에 갈수록 처치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에서는 당시 미 해병대의 훈련모습과 다양한 용어와 욕설이 잘 그려져 있다. 전쟁이 인간들을 어떻게 황폐화 시키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그동안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만든 작품은 꽤 많이 만들어 졌다. 한결같이 전쟁의 비인간성과 몰가치성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사실 이 영화도 그러한 반전 영화의 한 장르이다. 과연 베트남 전쟁은 미국, 베트남, 우리나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미국은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었으며 베트남은 세계열강들을 물리친 자부심으로 후에 도이모이 정책을 실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더욱더 민주화가 후퇴되었고 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이 영화는 반전영화이다. 어설픈 전우애를 그리지도 않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병사들 보다 앞장서는 듬직한 장교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대사들은 베트남 전쟁을 드러내놓고 조롱하고 있다.
영화는 크게 주인공인 ‘조커’가 훈련소에서 겪는 일과, 베트남에서 겪는 일로 나눌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훈련소에서 어떻게 해병을 만들어 내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미 해병을 양성하는 훈련소를 보며 나는 굉장히 놀랐다. 우선 화장실 변기가 칸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았다. 이런 화장실이라면 용변을 보는 모습이 남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또 훈련병들을 가르치는 교관에게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훈련병들을 처음 보자마자 교관은 훈련병들의 이름 대신에 별명으로 그들을 부른다. 뚱땡이, 눈송이, 카우보이. 별명을 지어주면서도 좋게 지어주지 않는다. 욕을 섞어가며 소리를 지르고 출신지를 욕한다. 또 얼굴 생김새를 가지고 모욕을 준다.
영화 첫 부분을 보면서 잠깐 나의 군 생활이 생각이 났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나의 이름 대신 120번 훈련병으로 불리던 훈련소 시절이 나는 정말 싫었다. 마치 내가 군대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제는 사람이 아닌 소, 돼지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 속 인물인 ‘뚱땡이’나 ‘카우보이’ 이었었다면 참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계속 보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내가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미군에 대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영상들이 계속 흘러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미군은 우선 일과가 훈련으로 가득 차 있다. 일과만 끝나면 굉장히 자유로워서 개인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준다. 내가 군 생활 내내 들었던 선진병영의 표본이 나는 미군 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화장실은 칸으로 나눠지지도 않았고, 교관에게는 폭언, 폭행 가혹행위를 당하는 것이 일상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물론 20년도 더 된 영화이니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에겐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미국도 한국처럼 개인의 잘못을 전체의 잘못으로 떠넘겨 ‘고문관’ 한 명을 만들어 내는 ‘연대책임’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군대는 어느 나라나 마찬 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고문관’은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군인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 ‘고문관’이라 불리는 사람의 자괴감, 분노, 우울 등을 영화에서는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 웃는 인상이었던 ‘뚱땡이’는 한 밤중에 동기들에게 집단으로 폭행 당한 후 변하기 시작한다. 혼잣말을 하고, 웃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눈빛은 정상인의 눈이라고 볼 수 없는 눈빛이 되어 간다. 결국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밤. 그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교관을 총으로 쏘고 그도 자살한다.
훈련소는 평범한 청년들이 어떻게 살인기계들이 되어 가는지를 보여주었다. 고된 훈련 속에서 쌓였을 스트레스와 감정들을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참아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감정이 쌓이고 쌓여 독이 오를 대로 오른다. 교관들은 한계 상황까지 간 그들을 보며 진정한 군인이 되었다고 더 이상 구더기가 아닌 미 해병이라고 말을 해준다. ‘뚱땡이’의 자살로 훈련소 장면이 끝이 난다. 이제부터 영화는 베트남에 종군기자로 참가한 ‘조커’를 중심으로미 해병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커’는 종군 기자로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방이 아닌 조용한 후방에서 병사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거짓된 기사를 써야했다. ‘조커’는 전쟁이 치열해지자 전방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전선에 투입된다. 전선으로 가는 도중 헬리콥터에서 민간인을 사살하는 ‘재뉴어리 대위’와 멀미 때문인지 자꾸 구토하려는 사진사 동료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준다. ‘재뉴어리 대위’의 대사는 전쟁에 대해서 감독이 생각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전쟁이 벌어지면 군인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 뛰어가는 민간인, 안 뛰어가는 민간인, 여자, 아이들 또 동물들도 죽어나간다. 그것이 전쟁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구토하려는 사진사 동료는 전쟁은 구역질이 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만든 장치인 듯하다. 미국은 북 베트남과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에서 미국을 닮고자 하는 베트남의 자유를 지켜낸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죽어나가는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며 미국 정부를 조롱하고 있다.
또 이 영화는 음악을 통해 분위기를 바꿔 무겁게만 갈 수 있는 영화를 감독이 가볍기를 원했던 부분에서는 가볍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 같다. 1부였던 훈련소에서는 배경 음악 대신에 훈련병들이 부르는 군가를 통해서 남성 중심 적이고, 음담과 폭력으로 가득한 군가를 통해 군대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면, 2부 베트남전에서는 상황과 맞지 않는 신나는 음악들이 자주 등장한다. 진군을 하다 잠시 쉬는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리듬의 배경음악은 치열한 전투를 치른 병사들과 부상병들을 나르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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