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부자성도 거지성도,
‘부자성도 거지성도’는 돈에 대한 성경적 지식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실천적 부분으로 나뉜다. 첫 파트인 ‘돈과 재물에 관한 성경지식’에서는 우리의 나태와 무관심으로 인한 영적 말씀의 무지로, 탐욕의 영이 잉태되어 세상과 돈에 맞추어 살아가며,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탐욕적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웠던 예로서 구약시대의 탐욕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한 선지자 발람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대부분 생각으로부터 비롯되며 이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으로 나뉜다. 이 때, 육의 생각이 영의 생각을 이기면 죄를 범하게 되는데, 특히 돈을 가까이 하게 되면 사단의 유혹과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영의 생각이 육의 생각을 이길 수 있게 해야 한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서 하나님의 세계에 사단이 침투하고 혼돈과 무질서를 만들었다. 사단은 만물을 바라볼 때에 창조주이신 하나님보다 돈을 먼저 떠올리게 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시키기 위해 돈을 만들었다. 이렇게 세상과 돈이 단짝이 되어 만물을 파괴해왔다. 타락은 또한 수고함과 노동을 돈의 가치로서 바꾸어 버렸고 요즘 세상 또한 돈의 영향을 받고 있다. 성경의 예를 들면,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그들의 땅을 팔아 받은 모든 돈을 베드로에게 주기로 했으나, 반만 줌으로서 죽었고, 시몬은 베드로의 권능을 돈으로 사고자 했다. 이렇듯 돈은 사람의 생각과 사단이 협력하여 이룬 작품이었다. 돈으로 인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우리들을 날마다 죽이며 비신자들의 영혼들까지도 매매하여 죽이고 또 말살하고 있다. 돈이 사단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돈이 사단의 작품이라는 암시가 성경에 있으며, 돈의 본질 또한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돈이 아니라 재물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때 만드신 하나님의 소유를 말한다. 그러나 돈은 이 재물에 탐욕이 더해진 사단의 작품이며 이에 대해 성경은 돈은 불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돈이 비록 불의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하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용해야 한다. 성경은 돈은 일만 악의 뿌리이자 일반 악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할 때 우리 마음에 악의 씨가 심겨지며 자라서 뿌리가 자리를 잡게 되면 악의 열매를 표출하게 된다.
돈은 결국 자살과 죽음을 불러온다. 보편적인 자살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부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돈과 관련되어 있다. 직접적인 죽음의 요인으로는 돈 그것 자체 때문에 서로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 있고, 간접적인 죽음의 요인으로 우울증이 있는데 결국 이는 물질적인 원인을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돈에서 자유함을 갖게 될 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살을 용납하지 않으시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과 죽으심을 무력하게 하는 처사이며, 모든 생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성서에서는 살인을 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살의 행위는 사단에게 동조하는 마지막 행위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오시는날까지 깨어 근신하며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기도, 성령님의 도우심,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같은 네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돈과 재물의 세력을 죽일 수 있다.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돈을 처리할 수 있고 우리가 말씀으로 돈을 죽이면 이는 곧 사단을 대항하여 사단과 그의 역사를 죽이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돈을 죽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돈의 공격을 받는 형제나 자매를 위해 기도하고, 돈을 죽이려는 우리의 의지의 합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 파트인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 서있는 그리스도인에서는 먼저 구약과 신약시대의 드림에 대해서 나온다. 구약시대의 십일조는 율법적인 의무사항이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십일조가 하나님의 율례였다면 현대에 있어 십일조는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이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며 모형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의 드리는 예물, 십일조를 포함한 구약의 모든 예물은 주님의 죽으심까지만 유효하며, 원래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고 아브람과 야곱이 자유롭게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드렸던 예물이었다. 따라서 주님의 죽으심으로 모은 율례들은 재번역되었으며 우리는 10%가 아닌 100%를 드려야 한다.
주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우리의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신약시대에 있어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내 이웃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으로 나뉘며, 이 헌금 액수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우리의 의지가 작용해야 한다.
구약시대의 부는 자연 소산물의 증가였고,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으로 인한 축복으로 부자가 되었다. 가난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게으름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 부자는 돈이 많으며, 힘과 권세로 약자의 부를 빼앗은 사람들을 칭한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의 부자들을 부정적으로 보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사단의 것인 돈으로 가득 채우고 있으며 부자들은 그들의 부로 인하여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의 성전인 우리의 몸에서 돈의 생각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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