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부자성도 거지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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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평 부자성도 거지성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책 제목 : 부자성도 거지성도 저자 : 최정길 페이지 18-309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에서는 돈과 재물의 정체, 배후세력, 마지막 시대에서의 영적활동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이 나열되어 있고, 2부는 구약과 신약시대의 드림, 헌금방법, 구약 및 신약시대의 부와 가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 등에 대한 진리의 말씀들이 성경을 바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지식들로 하나님과 재물사이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선택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섬김을 드리는데 있어서 보다 더 확실하게 된다. wrap container content primaryContent bbs_contents user_contents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안에서의 빈부의 격차를 일으키는 우리의 영적 말씀에 대한 무지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나태함이고, 둘째는 우리의 무관심이다. 이 둘은 서로 합하여 우리에게 영적인 지식의 무지를 가져다주며, 탐욕과 함께 우리 교회 안에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이끌어 내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하나님께서 부자와 눈 먼 것을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부자는 영적인 소경으로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눈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 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결코 탐욕적인 부자가 되는 우를 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로서 발람의 길을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야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에 대한 공동 사용은 계속 지켜져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들이 현재는 유통매개체인 돈으로 전부 계산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만물들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표현하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만물들을 대할 때 마다 창조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고 대신 돈을 먼저 떠올리게 되어 돈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창조물이 아니었다. 만유 안에 들어 있는 자연의 소산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이며, 세상의 돈은 사단의 개입에 의하여 이루어진 타락의 산물이다.
누가복음 16장 11절-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재물을 하나님의 것이 아닌 남의 것 즉 사단의 것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사단에게 넘어가 예속되었을 때 세상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속한 세상이 아니라 사단의 세상, 변질된 세상이 되어 버린 것과 같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돈과 재물을 같은 것으로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죽음은 돈 그 자체 때문에 서로를 죽이거나 자신들을 죽이는 죽음을 가리킨다. 이는 돈의 악한 세력의 전형적인 결과이다. 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죽음도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우울증에 관련된 죽음이다. 우울증의 요인들은 재정적인 어려움, 직장 및 가정의 문제들, 상실감, 외로움, 스트레스, 부정적 생각이다. 따라서 이러한 우울증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돈 때문만 아니라 간접적인 세력에 의하여 급한 상황으로 우리들을 몰아간다. 우리가 날마다 돈과 재물의 세력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패배와 절망감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온전한 섬김을 드리는 삶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창조하신 이후 구약시대이든 신약시대이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소유이다. 우리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 몸 안의 내적인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고, 우리의 소유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몸 밖의 그 어떤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구약 및 신약 시대에서의 하나님께 드림은 결국 자기의 소유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드림에서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게 되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헌신의 정도를 표현하게 된다. 구약시대의 율법들의 변역, 그 중에서 십일조도 주님의 죽으심으로 역시 변했다.
신약시대의 헌금방법으로 액수를 지정함을 강요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액수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헌금의 용도에 대한 지정은 가능하다. 우리가 마음에 작정하여 실제로 헌금을 드리기까지는 두 가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님의 인도이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실행하기 위한 우리의 선한 의지이다. 우리의 선한 의지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합력이 되어야 우리는 선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부에는 세 가지 부가 있다. 첫째는 영적인 부 또는 부요함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부이다. 둘째는 지식의 부이다. 이는 세상에 살면서 필요한 세상의 지식에 대한 부이며, 이는 또한 지성의 부로 표현되기도 한다. 셋째는 이 세상의 물질적인 부이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물질적인 부를 위해 평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주님 다시 오시면 이러한 물질의 부는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인 부는 영적인 부에 반비례하다. 우리가 물질의 부를 더욱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의 영적인 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구약시대의 부자는 주로 물질적인 부자로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연 소산물을 증가시켜 주심으로써 부를 증가시켜 주셨다. 구약시대의 있어서 부자는 하나님 말씀의 순종으로 인한 축복으로 부자가 되었고 이와 반대로 가난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및 게으름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구약시대에서의 부자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신약시대의 물질적인 부자는 거의 재물인 돈의 증가로 나타난다. 신약시대의 부자는 힘과 권세를 통하여 약자의 부를 빼앗음으로 부자가 된 것으로 나와 있다.
신약시대의 부는 영적인 부와 물질적인 부로 나누어진다. 하나가 많아지면 다른 하나는 적어지게 된다. 신약시대에서 가난한 자들이 큰 축복을 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질적인가난은 우리 마음속에서의 부요함과 마음속의 빈곤이 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이미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즉 물질이 마음에 차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마음속이 비어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