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미완의시대 InterestingTimes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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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미완의시대 InterestingTimes 를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미완의 시대(Interesting Times, Eric Hobsbawm)」를 읽고 -
이 책의 원제는 “Interesting Times"이다. 왜 ”흥미로운 시대“일까? 에릭 홉스봄은 20세기의 살아있는 증인이며 경험자로서,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나치즘과 전쟁, 이민, 그리고 그 속에서 동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민족에게까지 소외당하는, 그의 인생은 노역의 삶이었다. 에릭 홉스봄에게는 자신의 노역스러웠던 삶과, 별스럽고 끔찍했던 20세기가 역사가로서 참으로 흥미로운 시대였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그저 흥미나 관찰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홉스에게 있어서 역사와 시대는 인간이 참여하여 만들어 나가야할 미완의 것이었다. 그래서 ”미완의 시대“로 지은 것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홉스봄은 별스럽고 끔찍했던 노역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1917년 6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계 영국인 아버지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가 2세 때 오스트리아로 이주했는데, 바이마르공화국이 쇠퇴의 길을 걷던 시기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고 2년 뒤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경험을 하게된다. 14세 이후에는 나치의 등장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역사가가 되기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였다. 그의 성장기는 생활을 위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그는 이집트,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을 거치면서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그러한 경험들이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기를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했다”고 말하며, 또한 그는 공산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들은 소련에서 판매금지가 되었고,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라며, “개인으로서는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이었다”고 회고한다.
특별히, 에릭 홉스봄은 재즈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첫사랑을 느낄 만한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 살 무렵에 나는 이렇게 음악의 계시를 받았다.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중략)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은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라고 말했으며 가명을 쓰면서 재즈의 비평가로도 활동을 했으니 그가 얼마나 재즈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영국에 정착하면서 마음 나눌 사람이 없었기에 재즈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재즈는 미국을 보는 통로였으며 미국은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나라였다. 그는 공산주의가 우월했던 시기에 자본주의의 산물인 재즈를 즐겼고, 자본주의가 우월한 현시대에 공산당이 해체된 1991년까지 당적을 유지한 열렬한 공산주의자다. 그는 자신이 왕따라고 느낄 만큼 사람들 속에 소외감을 느끼며 살았지만 재즈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며, 공산주의자였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을 넘어 재즈를 통해 이념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용성을 가진 넓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느꼈다.
에릭 홉스봄은 재즈를 통해 미국을 보았다. 그가 공산주의자였기에 미국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영국인이 무비자로 미국을 갈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는 22장 서두에 “내 또래의 지식인에게 두 개의 조국, 그러니까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 또 하나는 프랑스가 있었다면, 20세기에 서양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 아니 궁극적으로는 세계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중국, 인도 등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현시대는 미국에 의해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에릭 홉스만이 지적하듯 “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인다.”라는 것이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세계화에 대해 토론을 했을 때, 나는 세계화에 대해 나름대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세계화야 어찌되었든, 현시대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식으로 세계경제가 흘러가고 있다. 미국과 다르면 “악의 축”으로 엄포를 놓고, 전쟁을 일으키며 무참히 밟아버린다. 그들은 자신과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유익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홉스만이 이야기 하듯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싶은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싫다거나 자본주의가 망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힘이 없는 나라들, 심지어 우리나라까지 미국의 쓴소리는 못할지언정 그들의 사탕발림이 되고 있는 현실에 가슴이 아플뿐이다.
현재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쓴소리를 하며 싸우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저 경쟁시대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바쁘게 살아가며 이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그리고 미디어는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더욱 자본주의에 맞게 살아가도록 생각을 빼앗아 간다. 더 좋은 대학에 가도록,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도록, 더 많은 돈을 벌도록, 더욱 아름다워지도록…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에릭 홉스봄의 생애와 마지막 문구를 통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한다. 그의 별스럽고 끔찍스러웠던 삶은 단순히 기억 속에 자리잡은 추억이 아니라 삶을 배운 것이었으며, 자본주의가 이데아의 종착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현시대는 20세기와 마찬가지로 모순과 모순으로 가득차있다. 전쟁과 테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극대화, 도덕성과 윤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등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리고 계속해서 가야하는 미완의 시대에 살고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사회의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라는 것이다.
요즘 ‘ㅎ신문을 읽으면서 노동자들의 삶과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계층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사회의 불의에 규탄하고 맞서 싸운다는 것이 대모를 하며 투쟁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빛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 부패된 곳에 소금이 되는 것이다. 모순과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이지만, 한줄기의 빛의 희망을 잃어버리지 말자. 한줄기의 빛이 언젠가는 따사로운 햇살이 되어 우리를 따뜻하게 해줄지 모르니 말이다. 역사는 계속해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