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를 읽고 ★ 미완의 시대 감상문 ★
먼저 부분발췌를 통해 특정부분만을 읽고 책에 대해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시작한 것에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실로 방대한 양의 책 이여서 지레 겁이 났고 나 역시 역사에 대해 문외한이여서 많은 부담을 느끼면서 다시 읽게 되었다.
작가의 한 세기를 꿰뚫는 통찰력과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해 내며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참 인상이 깊었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에도 나왔듯이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아왔으면서도 편협하게 살지 않고 그것이 옳지 않다면 늘 저항감을 보였던 그런 삶을 그는 소망하였고 또한 그렇게 살아 왔다. 날카로울 때는 인정사정 없이 냉정한 역사가의 모습으로 살아 왔다.
이제까지 홉스봄이 썼던 책은 시대마다의 그 시대를 관통하고 주도해가던 역사적 시대적 흐름에 대해서 담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책들과는 달리 한 세기를 살았던 홉스봄이 자기가 살아갔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썼던 그의 자서전이다.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라는 말을 통해서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는 말을 통해서 나는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봄은 세세한 이야기까지 어제 겪었던 것처럼 상세하고 자세하게 기술 하였다. 그것이 그냥 한사람을 지나치는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전체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그런 영향력을 누구 보다 더 잘 아는 홉스봄이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홉스봄은 유대인 출신으로서 그 피를 물려 받았지만 “유대인 아닌 유대인”으로 그렇게 자유롭게 살아 왔다. 유대인이라면 특유의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흩어져 살아왔던 시간 만큼 그들의 민족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그리고 그들은 디아스포라로써 그들을 지금 까지 이끌었고 그들에게 선민사상을 불어 넣었던 신의 뜻에 따라 그들의 신성한 땅이고 다시 회복해야 할 땅인 팔레스타인 땅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그들의 숙명 사업으로 여기고 살아 왔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핏줄로 태어난 그는 역사학자로서 대부분의 유대인이 그렇게 살아왔듯이 유대인의 손에 힘을 더 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홉스봄은 한발 벗어난 눈으로 그들을 바라 보았고 그들의 영향력과 창조성이 그들이 모여 살 때보다 사방으로 흩어져 살았을 때가 더욱 십분 발휘 되었다고 지적 하였다. 그리고 나치 학살에 대해 유대인의 희생적 의식에 까지 발맞출 필요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그에게는 민족성이라는 것은 가당치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더욱 깊은 생각을 해 보았다. 홉스봄은 비단 역사 학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민족주의의 의식에서 거리를 두고 견지 할려고 하였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한가지의 관념만을 가지고 산 사람이 아니라 진짜 역사가로서 삶을 살아갔다. 역사가에게는 냉정한 비판 능력이 그리고 시대를 꿰뚫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어쩌면 유대인의 핏줄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역사가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공산당으로 남았다. 그가 공산당의 직임을 벗는다면 저자가 밝혔던 것처럼 더 인정받고 더 나은 대우로 사람들이 그를 받아들였을 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그것을 지켰다. 그것은 자존심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는 그것을 통해서 자신에게 자신스스로를 증명할 수 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남들이 뭐라 하던 그는 그의 신념에 맞는 선택을 하였다. 그가 공산주의였다가 반공주의자로 시대를 타고 급변한 사람들처럼 그 자신을 바꾸어 나갔다면 사람들은 그를 시대적으로 옳게 판단하거나 시대가 원하는 사람으로 공산주의 이념에 오랫동안 빠졌지만 지금 시대가 버려 버린 공산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난 시대를 옳게 보는 역사학자란 칭호를 붙였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신념을 택하고 끝까지 공산주의자로 남았다. 그의 가치판단이고 개인적 소견이지만 그것이 앞에서 그가 언급한 것처럼 그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전체에도 빛을 던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그의 그 신념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공산당을 통해서 분명히 세계혁명과 싸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충분히 그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세기였던 20세기를 바라보고 미국에 대한 통찰력을 그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연줄이나 학자로서의 인맥보다 그가 사랑하고 애호하는 재즈를 통해서 그는 미국을 더 잘 이해하였다고 말한다. 왜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를 보는데 다른 나라뿐 만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가장 위대한 나라로 인식하는지에 대해 작가는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다. 이부분을 통해서 나 역시 왜 미국이 20세기의 중심이고 자기 자부심이 그렇게 투철한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왜 미국인들은 그들의 현실을 통으로 보는지 전체적으로 바라보는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는 그것이 실제적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창조라고 밝히고 있다. 여전히 세상의 중심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혹하리 만치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를 세기도 벅찰 정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 미국에 대한 곱지 않은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 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빛이 강한 만큼 가려진 음지와 어둠이 많은 현상을 지금 미국이 나타내고 있다.
옳은일 이라는 명목아래 그들이 행하는 실로 수많은 것들이 세계평화의 명목아래 자행 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저자는 냉철한 날을 갈고 있다. “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마이너 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을 천년은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혁명 정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은 아니니라” 이것이 20세기 아니 그전까지의 역사를 두루 섭렵한 냉철한 역사학자의 판단이자 어찌 보면 강한 확신이다. 미국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겉으로만 거대하게 비춰지지 않을 뿐 곪을 대로 곪은 속사정을 간직 한채 그렇게 강대국 행세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이 전 세계의 패권을 가지고 그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착역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는 것을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다. 너무 거대해져서 종잡을 수 없이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한 국가가 자멸 한다면 솔직히 그리 내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니 어느 국가도 쉽사리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 나라에 영향권 아래 있기 때문에 그 나라를 닮아가기 부던히 애쓰는 모습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국은 자기의 한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는 아주 크다. 우리가 지금 어느 장단에 발맞추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 우리의 미래를 가꿔 나가야할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다.
방대한 양 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째로 꿰뚫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어느 분이 유대인은 실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우리하고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이해능력과 지식의 습득 수준이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다. 홉스봄이 유대인 출신이라서 그렇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방대한 사고 능력은 절대 무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대한 객관적인 모습을 유지 하되 그러나 휩쓸리지 않는 주관을 가진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도 역시 작은 사건을 주관적인 시각이나마 꿰뚫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도 문제에 대해서 그 문제에 깊이 결부된 사람으로서 “만약에”라는 물음을 던지고 또 거기에 답변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야 함을 그의 글을 인용함으로 써 다시한번 느끼며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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