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Lewis의 고통의 문제 를 읽고
‘고통의 문제’의 맨 앞 표지에는c.s.루이스와 이 책에 대한 여러 이들의 찬사가 소개되어 있다.
“하나님이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피조물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가? 는 의문에 대한 명징하고 강인한 신학적 답변!”이나 Guardian의 “한 권의 책을 아무 거리낌 없이 칭송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등의 찬사는 내게 이 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게 했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c.s루이스의 작품 세계를 경험한 많은 이들의 말처럼 내게 있어 루이스의 책들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보다 소설처럼 설렁설렁 읽어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책이라고 해야 더 맞지 않을까 싶다. c.s루이스는 갖가지 예상되는 반문을 먼저 제기함으로써,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 여러 가지 풍부하고 합당한 예들과 논리적이고 명쾌한 답변을 제시함으로써 읽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 고통의 문제는 총10chapter로 구성되어 있다. 각chapter는 서로 다른 주제에 대한 내용이지만 ‘고통’이라는 한 가지 큰 주제를 향해, 그리고 그 큰 주제를 보다 깊이 통찰하기 위해 필요한 작은 여러 가지 주제들로 구성되었다. 약간 억지일지 모르지만 각chapter의 제목을 잇는 것만으로도 고통의 문제에 대한 주제를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선하고(3장) 전능(2장)하시지만 인간의 악함(4장)과 타락(5장)으로 인간에게 고통(6,7장)을 주신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말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경험한다. 돈이 많든지 적든지, 행복하든지 불행하든지, 또는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어쨌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크고 작은 고통을 어떤 형태로든지-적어도 한번은-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소설의 묘미, 클라이 막스 부분은 각 등장인물의 위기와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때를 말하며, 우리 인간 세계에는 감정의 정화작용, 즉 ‘카타르시스’-비극,슬픔 따위를 통한 감정의 해소-라는 단어도 존재한다. ‘고진감래 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가 있으며, ‘No pains, No gains’라는 영어 속담도 있다. 이 예들은 모두 -물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고통 후에 기쁨이 온다’라는 의미와 크게 일맥상통한다. 이 많은 말들 중에서 각각, 고통이라는 단어-또는 의미-를 빼 본다면 어떨까? 아마, 우리들은 위의 예들에서처럼 진정한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우리가 지금 누리는 행복과 기쁨이 ‘행복’과 ‘기쁨’임을 모르고 -즉,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모르고- 마치 어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무 표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에 대해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이 때로 피조물의 거짓된 자족감을 깨뜨려 준다면, 극도의 ‘시험’ 내지 ‘희생’에서 나오는 고통은 피조물이 진짜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 자족감-‘하늘(Heaven)이 주신 것이기에 곧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이 책 맨 앞에 나오는 것처럼, 왜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실까? -사랑하시니까? 그러면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고통을 주시는 걸까? 이에 대해 루이스는 고난 그 자체는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며, 고통스러운 경험의 유익과 그 고통의 효력에 대해 몇 가지로 잘 정리해 주고 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꼽아보면, 고통은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전부 우리 것이며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며, 또한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 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방법이 그것-고통을 주시는 것-밖에 없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그 전에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귀담아 듣지 않고 아니, 귀가 먹어서 들을 수가 없었고,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친히 ‘메가폰’을 드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통은 인간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만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 계획의 완성(?)에 있어서 고통은 어쩌면 하나의 필수 코스course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필수 코스는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들 각자에게 주신다. 마치 지금 우리들에게 끼치는 c.s루이스의 영향력을 생각하시고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이나, Joy와의 만남과 헤어짐 등 그에게 ‘필요한’ 고통-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의 크고 작은 고통 모두를 포함-을 주시어 그를 더욱 더 성숙하고 깊게 만드신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제 23살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런 고통을 겪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직까지 용기가 없어 이곳에 내가 겪은 고통을 이야기 할 순 없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분명 내 인생의 ‘유익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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