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제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나 제주도에 내려와서 사는 사람들, 굳이 이곳에서 살지 않더라도 4.3 사건에 대해서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또한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면서 어디서든 4.3 사건에 대해 많이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나에겐 까마득하게 먼 옛날, 1948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큰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그저 숙제가 있을 때나 의무적으로 평화공원을 가고 그곳에서 나눠준 책자를 제출할 뿐 이었다. 이번에도 4.3 사건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과제를 받고 기계적으로 4.3 주간행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관련된 책자를 읽는 동안 나에게 4.3 사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경찰지서)
4.3 사건은 우선 4월 3일에만 일어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 4.3 사건은 4월 3일 남로당 무장대의 기습으로 시작되어 한국전쟁이 휴전 될 때까지 계속된,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이다. 이 사건의 기원은1947년3월 1일에 제주 북 국민 학교에서삼일절기념 제주도 대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행사를 끝낸 군중들이 가두시위에 들어갔고 그 중에 기마경찰에 아이가 채이고경찰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는 작은 소동이 발생하여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은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줄로 알고 발포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이 사건 이후로 관청과 경찰들이 파업에 들어가 66명의 경찰이 해임되었고, 그 자리는육지(한반도 본토)에서 온서북청년회소속 사람들로 충원되었다. 그리고 1948년 4월 3일, 5.10 총선거를 반대하고 통일된 조국을 설립할 것을 주장하던 남로당 제주도 지부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의 전 경찰 지서 24개 중 12개를 공격하고 경찰 가족을 살해했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군경의 대처였는데, 그들이 파악한 무장대 숫자는 최대 500명이었으나 제주도민 전체를 배후로 보고 무장대 본부가 있는 한라산 지역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해버린다. 그리고 군경 및 토벌대는 이 근처를 얼씬거리는 사람은 남로당 무장대로 간주하여 말 그대로 가차 없이 죽였는데 총살은 물론이고, 본보기로 참수형에 처했고 연좌제를 적용해 친인척이나 면식이 있는 사람들을 공개처형했다. 게다가 이미 해안지역으로 내려온 일반 서민들마저 가족이 없으면 대신 살해를 당하는 일마저 당했고, 빨치산들도 군경에 협조하는 반동분자를 처단한다는 이유로 도민들을 학살하곤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총 희생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대 제주도민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 된 것으로 추정된다. 몇 사람 건너면 4.3 사건 희생자라는 뜻으로, 종종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 이 이야기가 나오면 진저리를 치시거나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제주도는 육지 (한반도 측)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나빠졌다. 더 나아가 민주화 이후에도 4.3 사건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순이 삼촌’의 경우 금서가 되었고 저자인 현기영은 고문 등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또한 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 ‘레드 헌터’는 국가 보안법에 의해 ‘이적 표현물’로 판단되었고, 1997년에 이 작품을 상영한 인권영화제의 주최자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4.3 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2000년에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사건 발생 55년 만에 2003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 첫 사과를 하였고, 2005년에는 최초로 국가차원에서의 4.3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리고 공식적인 사과 한지 딱 10년이 지나 제주인 감독 오멸이 만든 2013년 ‘지슬’ 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대통령의 공식사과를 담은 사진)
1948년에 일어나 2015년이 될 때까지 4.3 사건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들에게 4.3 사건은 이미 과거에 멈춰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묘비를 찾아가고 꽃을 놓으면서 추모를 하는 동안 그저 예전에 일어났던 일이 아직도 우리 곁에 맴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말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그러나 기록만 되어 있을 뿐 아무도 찾지 않는 역사는 곧 잊혀지게 될 것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 아닌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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