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클림트 전시회를 다녀와서
0000년 3월 21일 토요일 화창한 봄 날씨에 무척이나 기쁜 마음으로 여자친구와 함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전시되어있는 클림트전을 보러 갔다. 사실 미술분야쪽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나는 이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내상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는 점과 정말 모든 사람들이 그림 하나하나를 아주 오랫동안 섬세하게 바라보는 모습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미술분야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꺼라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편하고 여유롭게 그림들을 감상할수 있을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빽뺵히 줄지어 그림들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본 난 놀랐고 그 놀라움은 내가 한가람미술관에서 모든 그림을 감상하고 나올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의식과 환경이 많이 발전해왔다는 의미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내가 문화 특히 미술분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실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클림트 는 황금빛 에로시티즘 으로 세상을 중독 시킨 화가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런 한 마디의 수식어 로 단정 짓기엔 너무 아쉬울 뿐이다.
화려한 그림 보색의 색채가 강조되는그림,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그림, 패턴이 있는 그림, 인체부터 풍경, 포스터 ,입체적 그림, 평면적 그림까지 그의 그림은 알면 알수록 더욱더 다양한 그림의 표현에 감탄하게 된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비엔나 근교에 바움가르텐 에서 귀금속 세공사였던
에른스트 클림트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것은 동생 친구와 공동으로 슈트라니 저택의 천정화(비엔나)작업으로부터였다. 이후 쏟아지는 주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작가로써의 명성을 얻었다.
클림트가 처음 선호 했던 작품들은 벽화로 사실적이면서 이상적인 역사를 다루거나 신화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비난이 있었던 벽화 철수사건 이후로 풍자우의의 작품에 집중 하게 된다. 이러한 시련을 과정에서 클림트는 회화건축 예술형태에 지적으로 관심이 높아져서‘토탈아트’라는 예술개념을 이끌어냈고 클림트 의 수수께기 같은 그림들은 토탈아트 의 주제로 하나씩 풀리게 된다. 그 중 베토벤 프리즈라는 벽화로 거대한 걸작인 토탈아트 실현을 거의 완벽하게 달성했다.
1897에 창시된 비엔나 분리파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예술가들이 일상 속삶에 최고의 매개체로써 예술을 최고의 것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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