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건국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엘리트와 민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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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을 읽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되었다. 60여년의 시간동안 많은 사건들이 국가에 의해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질병, 굶주림, 가난, 공사의 폭력으로부터 견뎌야 했다. 아니, 국가는 가난하지도 굶주리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것은 개인이다. 국가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개인이 가진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이 글은 국가에 의해 기록된 역사가 아닌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구술사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구술사는 주류사인 지배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피지배자들의 세계를 구두증언의 도움으로 망각으로부터 구해내는데 효과적이라고 여러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조명받기 시작한 구술사에 대한 관심이 국가폭력의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건국과정에서의 국가폭력 문제는 우리 역사의 우울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서 민주공화국으로 성립됐고 시장경제체제로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는 수많은 분열과 혼란이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제도 기초는 더욱 견고해졌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건국 당시 일반화되거나 정립되지 않은 용어였던 개념이 제헌헌법의 기본정신이 된 것과 당대인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에 대한 질문은 구술사를 토대로 ‘건국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이 글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의 의미가 ‘입헌적 절차와 선거에 의한 선출’정도로 축소되고 ‘법률과 포고문 구절의 존재’와 동의어가 때 이를 생산하는 엘리트의 역할은 강조되고 민중은 객체화 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할 때 언제나 최초의 보통선거인 5.10선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선거는 논쟁과 격돌이 불가피한체제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졌다. 엘리트들이 만들었던 텍스트 속에 살아 숨 쉬던 ‘자유민주주의’는 유권자들과 공유되기는커녕 ‘통보’되지도 못했다. 건국과정을 엘리트 중심의 협소한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있는 연구들도 많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민주주의를 엘리트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화 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비이성적인 현실이 결국 어떤 미래로 우리를 인도할지 전망해보기 위해 또 사실에 더욱 근접한 과거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구술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건국기 헌법은 국가의 횡포를 막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에 충실했을까? 국가보안법, 비상조치령, 일제하 계엄령과 같은 법으로 인해 국민들의 법감정은 악화 될 수 밖에 없었다. 식민지시대 국민들이 만나는 국가는 경찰이었다. 가장 자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경찰의 성격은 곧 국가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찰은 무력집단으로서 국민들에게 힘을 행사하며 온갖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았다. 법적인 근거도 없이 경찰이라 착각하며 활동하던 청년단 역시 국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국가 엘리트는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 구조를 외면한 채 무력단체들이 헌법과 건국이념은 무시하고 폭력으로 해결하도록 만들었다. 밑바닥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분노에 의존하여 사실상 학살, 보복을 방관한 것이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에게 사람 잡는 흉기를 건넨 것은 대한민국이었다.
전쟁 전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현대사의 논쟁적 주제이다. 이 중심에는 토지개혁과 5.10선거가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별다른 대가 없이 국민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요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름에 답한 국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굶주림과 죽음 그리고 배신이었다. 한번 버려졌던 국민들은 그것이 불행의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불운과 행운을 가르는 요인은 계급 혹은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인가였다. 전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라디오에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소리만 흘러나왔지만 상당수 지배집단은 가족을 피난시켰다. 이를 통해 국가 엘리트들은 공익의 대변자가 아니라 사적이익의 추구자임을 알 수 있다. 헌법과 건국이념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의 역사가 겪은 대규모의 폭력사태로 빈껍데기와 같이 돼버렸고 갈등을 방관하고 법과 제도의 위반자였던 국가는 국민들을 통합할 수 없었다. 국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구술자들의 말에 의하면 1950년대의 불평등은 인격적인 힘, 즉 국가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인격적인 힘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자유사회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행정 뿐만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도 부정과 불평등은 존재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초가 공고해졌다는 낙관론 이면에 숨겨진 실상이었다.
건국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이념을 담은 헌법전을 가지고 시작됐지만 시작과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대함은 엘리트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을 견뎌내고 자신들의 피땀을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국민 개개인, 대한민국은 그들의 산물이다.

이 글은 일반적인 역사기록이 아닌 개인들의 기억에 토대를 둔 구술사를 중점으로 우리나라의 건국 과정 및 현대사를 재해석해나가고 있다. 우리가 접해왔던 역사는 지배층에 의해 결정되어진, 역사의 어두운 측면은 배제한 반쪽자리 역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피지배자들에 의해 구술되어진 역사의 이면에 감춰졌었던 ‘건국과정의 국가폭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를 느꼈다. 그러나 반면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개인의 구술에 치우친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국과정이 일부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민중들은 객체로써 국가의 폭력에 대한 피해자로 단정지어버리는 것과 같은 태도도 보인다. 하지만 현대사를 그동안의 엘리트적 관점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엘리트중심이 아닌 민중 개인의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은 그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건국 이래 국민들은 정치엘리트들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받고 무력집단의 횡포에 휘둘리고 국가에 부름에 대한 대가로 지독한 배신을 경험했다. 우리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를 접하면서 그것이 그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이며 그것을 주도한 엘리트들을 공익의 대변자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그들은 사적이익의 추구자에 불구하며 그러한 역사가 그들에 의해 포장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았을 때 국가차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고통과 슬픔의 실상을 좀 더 와닿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및 발전 과정에 있었던 국가폭력은 분명 우리 역사에 있어서 암울한 흔적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의식 있는 현대인으로서 이러한 역사에 늘 관심을 가지고 엘리트주의에 갇힌 생각을 전환시키면서 이 글의 입장에서처럼 소수 엘리트가 아닌 다수의 민중이 겪었던 감춰진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며 이를 토대로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준비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