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엘리 비젤의 밤 나이트
엘리 비젤의 『나이트』는 책의 저자가 직접 격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각색시켜 적어낸 일종의 자전적 내용의 소설이다. 이 책은 주인공이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나치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와 누이들이 용광로 속에서 산채로 죽임을 당하고, 처참한 수용소에서의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 끝에 결국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인 아버지의 죽음까지도 목격해야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의 충격은 단지 이 이야기가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픽션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사람에게 자행된 실제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그의 가족, 이웃들이 고통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단지 하나, 바로 그들이 유태인이라는 것이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노동과 굶주림, 그리고 학살을 경험해야만 했다. ‘방패’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보호의 상징이자 그들의 자랑스러움의 상징인 ‘다윗의 별’은 이제 그들의 가슴에 죄인의 표처럼 달려,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상징이 된다. 그들의 유대인으로서의 자존감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이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증표가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며 뇌리에 남게 된 몇 가지 장면들이 이 있다. 첫 번째 장면은 강제로 추방되는 열차 화물칸에서 일어난 일이다. 화물칸에 어느 독일인 노동자가 던진 빵 한 조각에 화물칸 속은 아비규환의 현장이 된다. 굶주린 사람 10여 명은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 서로를 향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특히나 큰 충격은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빵조각을 지닌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주먹질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한 아들의 모습니다. 아버지는 절규한다.
“마이어, 마이어, 이 자식아! 날 모르겠냐? 네 애비다 ... 아프다 아파 ...
넌 지금 네 애비를 죽이고 있어! 여기 빵이 조금 있다 ... 네게도 줄 ... 네게도 줄...”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한 채 결국 노인은 죽음을 맞이하고 아버지에게서 빵을 취한 아들은 다른 이들의 공격에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장면을 보며 먼저 느낀 느낌은 참으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화물칸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유태인들 자라오면서 토라를 묵상하며 외우고, 탈무드를 공부하고 인생의 진리를 고민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굴복하여 자신들의 가치를 저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다. 빵 부스러기를 취하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의 모습, 이 모습이 픽션이 아니라는 것은 오늘날에도 알 수 있다. 뉴스에서 부모의 보험금을 노려 살해한 자식의 모습을, 또 부모와의 마찰로 인한 살인충동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자식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과연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그 바닥은 어디일까? 또한 책의 상황을 보고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은 당연하면서도 인상 깊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아비규환을 목격한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엘리 비젤’은 절규한다. “왜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해야 하는가? 영원한 우주의 주인이요 전능하시고 두려운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이 모든 상황 가운데 전능자라 믿는 자신의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하나님이 과연 찬양받으실 존재인지 의심하고 그분의 전지전능함에, 심지어 그분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보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참함에 또한 이를 그저 바라보고 있는 절대자라 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주인공은 이러한 절규를 내뱉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또한 오늘날 느낄 수 있다. 지구 저편 어딘가에서 아니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땅에서 조차 죄 없는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고통받고 심지어 살해된다. 이해활 수 없는 자연재해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군 복무를 하던 시절 나를 향해 물었던 선인병사의 질문이 떠오른다. 당시 내가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선임병사는 신학을 공부하다 왔으니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를 요구했다. 질문의 요지는 이러했다. 자신의 어머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이라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오랜 기간 질병으로 아파오셨는데 자신은 신실한 어머니가 그저 아프시도록 방치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 짧은 지식 안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 사람의 악과 고통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몇 마디 대답을 해줄 수 있었지만 질문한 그와 또 답한 나 둘 다 마음의 시원함을 느낄 수 없었다. 누구라도 이 악과 고통에 대한 문제를 쉽사리 해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두 번째로 인상 깊은 장면이자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으로 ‘부나 수용소’ 안에서 일어났던 한 처형 집행 장면이다. 그곳에선 세 명의 남자가 교수형을 당하기 위해 처형장으로 올라갔다. 그 중 엘리비젤은 세 번째 사람인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지켜본다. 다른 두 명의 성인은 이미 죽음을 맞이했으나 아이는 몸이 가벼워서인지 다른 이들보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죽음을 서서히 맞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엘리비젤에게 어디에선가 질문이 들려온다.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의 내면 속에서 어떤 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라고 말이다. 바로 이 질문과 대답 속에서 책 내내 가지게 했던 의문이 해답이 담겨있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이 유태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그 현장에서 바로 그들과 함께 고통당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의 현장에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함께 죽음의 고통을 맛보신 것이다. 교수대에 매달려 가장 끔직한 고통을 겪고 있던 아이와 함께 하나님이 매달리셨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인상 깊은 장면에서 이야기 했듯 책 속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주인공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또 책을 읽는 독자는 ‘도대체 이 모든 상황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느껴진다. 유대인들은 대 학살 사건을 지나면서 심각한 신앙에 대한 도전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책 내용에도 나왔듯이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이 믿어온 모든 가치를 버리고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이 상황가운데에서도 절기를 지키며 주님께 감사하자 말한다. 주인공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는 아버지의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하지만 그로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두려워하고, 절기를 위해 금식하자는 신실한 유태인의 말에 갈등하다가 자신은 음식을 먹는다. 오늘날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대학살의 상황에 처한 유대인 만큼은 아닐지라도 불합리한 상황에 수업이 처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슬픔과 괴로움의 순간이 찾아 올 것이다. 가끔은 그러한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도저히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조차도 흔들릴지 모른다. 이러한 순간에 어떠한 자세가 다시 일어 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여전히 붙잡을 수 있을까? 바로 나의 가장 끔직한 그 고통을 그날 그 순간에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의 기쁨의 순간에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자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 세상가운데 수많은 악들을 방치하시는지에 대한 해답은 너무 어렵다. 그 대답을 명확하고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을 찾는다 하여도 그 고통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러한 이유로 세상의 악이 많으니 그 고통을 참으라고 납득시킬 수 있을까?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고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엘리 비젤이 마음 속 목소리로 어렴풋한 해답을 찾았듯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우리의 고통을 방치하시는 분이 아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함과 그 사랑에 대해 확신일 것이다. 나의 삶 가운데에서 연약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때, 또 끊임없이 발목을 붙잡는 세상의 악으로부터 고통 받을 때에 이를 극복할 해답은 나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그 신뢰 속에서 나는 고통 중에라도 나와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나 또한 당신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그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에 고통이 없을 거란 건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언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를 고난과 사건에 집중하다보면 그것은 참으로 막연하고 답답한 삶이다. 그러나 그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모든 순간에 나에 대한 사랑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또 나의 삶 가운데 계속해서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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