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섬머힐 학교를 보고
자유주의는 루소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아이들의 자유를 중시하였다. 교육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그래서 선생님이 주체가 되었던 기존의 교육이론에서 이제는 교육을 받는 당사자, 아이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지식은 부족하다. 아이들은 이제 막 세상과 만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지식이라는 것은 경험으로 축적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경험이 적은 아이들이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에서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었을까?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개성 신장’ 이었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똑같은, 평균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것, 그것을 발달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는 평균적인 인간에서 벗어나면 사회에서 고립되었던 기존의 사회에 대해 완전 반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섬머힐 학교의 도덕교육이 인상적이었다. 아니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 도덕 습득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습득한다. 중학생 때 도덕 과목을 배울 때 회의감이 들었다. 이걸 배운다고 내가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5살짜리 아이에게 물어도 알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시간들은 나에게 무의미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도덕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나였어도 ‘도덕’은 학습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이미 배웠기 때문에 쉬운 내용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나를 순응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습은 반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마르크스는 경제결정론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사회의 하부구조인 경제적인 물질이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하부구조의 경제적인 물질을 차지한 존재가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얘기도 된다. 그럼 그동안 우리가 받았던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교육은 지배층의 가치를 우리에게 학습시키고 순응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 이미 익숙해지게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도덕교과서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만 가득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만약 누가 나에게 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을 때는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점점 많아졌다. 이는 누군가의 통제에 의한 교육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차피 도덕은 사회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곳이고 그러하기 때문에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기본적인 것은 지키자는 취지로 배우는 과목이다. 그러나 교과서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우선은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존재로 기본 가정이 되어있다.
섬머힐 학교에서는 우리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배우기 이전에 자신의 감정을, 자유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우선은 자기 자신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나에게 이런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생각하기 이전에 교과서에서 익히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나는 이 점이 섬머힐 학교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입시를 앞두고 점수에 맞춰서 자신에게 이것이 맞는지 않았는지 고민도 못한 채 쫓기듯 대학을 가는 아이들, 누군가의 지시 없이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혼자서는 결정하지 못한 채, 결국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도 못해서 혼란에 빠지는 우리의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나는 도대체 우리나라의 교육의 목적이 어떤 사람을 만드는데 있는지 가끔은 너무나 궁금하다. 자유로운 인간 양성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기준에 맞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있는지, 아니면 이에 대해 생각해 본적도 없는지.
사상을 내놓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학교를 세운 닐의 섬머힐 학교. 난 거기서 행복과 자비와 용기를 갖춘 인간 양성이라는 교육 목적이 맘에 들었다. 목적이 인간 그 자체에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는 낯설면서도 감동적이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행복이한 삶이라고 정의 내리곤 했다. 하지만 이게 다 무엇인가. 결국엔 남의 시각에 따른 것 아닌가.
그러나 닐은 남이 아닌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라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정말 듣기만 해도 답답했던 마음이 뚫리는 느낌이다.
너무나 부러운 학교이고 우리나라의 학교도 이런 학교였으면 하지만, 이는 어쩌면 그 학교에 학생수가 소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학교에 일반학교처럼 정원이 백단위로 넘어간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적고 그러다 보니 서로 친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아동의 본성이 선하다는 데에는 인정을 하지만, 아이들 각각이 사는 환경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본성을 드러내는 데까지 시간이 천차만별일지도 모른다. 물론 섬머힐 학교에서는 2~3년이면 된다고는 했지만, 글쎄다. 그것은 모르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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