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존큐
이 영화는 단란한 흑인 가정의 평범한 아버지 존 큐와 아내, 보디빌더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아들 마이크가 나오는데 극한 상황에서의 부성애와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비판한다. 돈이 있어야 치료하고 보험이 있는 사람만 목숨을 지속시킬 수 있고 돈만 쫓는 의료계의 현실과 자신의 지위만 지키려고 인간미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존 큐는 직장을 잃어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지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이크가 야구시합을 하던 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마이크가 선천성 심장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미리 알지 못하고 방치를 해 두어서 이미 회복시킬 수 없는 상태며, 마이크를 살리려면 심장이식 수술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수술비를 마련하려 어떻게든 손을 써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지만, 존 큐는 정부의 지원금도 힘들고 사회보험도 없는 상태이기에 병원에서는 수술은 커녕 돈 없이는 기증자를 찾는 목록에 이름조차 올릴 수 없으며 병원에서 퇴원시키려고 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좀 해보라는 아내의 말에, 존 큐는 아들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기증자를 찾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달라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총을 들고 병원 응급실을 점령한다.
밖에는 수많은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고, 존 큐의 요구는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의 전화를 미끼로 몰래 저격수를 들여보내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이러한 사실이 방송을 통해 내보내지고 수많은 시민들은 존 큐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한다. 존 큐는 경찰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자신의 심장을 꺼내서 아들에게 주겠다며 총을 머리에 겨누기까지 하였으나 결국 심장 이식자를 찾아 마이크는 이식을 받는다. 위법을 어긴 존 큐는 유죄를 받아 감옥에 가긴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예전에 사회복지정책을 배우기전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배우기전에는 단지 따뜻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주는 영화라고만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과제를 하면서 다시 본 존 큐는 실패한 의료제도로 인해 미국 국민들 대다수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의료체계상 공통점은 의료서비스가 의료보험의 형태로 제공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보험자로서 한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일원화 되어 있고 미국은 민간의료보험회사가 담당하는 것이다. 한국은 보험 공단의 보험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어 사실상 국가 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보험공단이 독점적으로 모든 병원과 강제적으로 계약을 하여 의료기관에 진료비를 환자 대신 일정부분 지불해 주고 환자는 어느 병원이든 가리지 않고 같은 가격에 표준화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반면 미국은 민간의료보험이 우리나라의 보험공단의 역할을 하는데 이 보험회사들이 하나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보험회사를 선택 할 수 있고 이 보험회사는 자기와 계약을 맺은 병원에서의 진료만 보험료를 지급해준다. 또 그 병원들은 보험회사의 소유인 경우가 많고 영리목적의 보험회사가 병원자본에 직접 관여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의료공급자에 가격은 낮추고 서비스는 높이도록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지만 역으로 이렇게 낮은 가격을 요구함으로서 차별화된 서비스 또는 의료신기술의 개발이나 도입에 불리한 점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은 여러 보험 회사들이 더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여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단점들이 반대로 미국의 장점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의료보험으로 인한 파산이 많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하루 빨리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고 계시는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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