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이 영화를 보면 옛날 어린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초등학교 다닐 시절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포천에 있는 고모네를 갔었다. 고모네 가는 길은 울창한 숲을 지나 사면이 논으로 되어 있었는데 꼭 영화속의 배경같이 공기가 좋고 개울이 있을 것 같다. 고모네가 소 농장을 해서 내가 여물도 먹여주었는데 그때 본 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난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면서 본 영화기도 하지만 기계화된 현대 문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가 직접 밭을 갈구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다. 요즘시대에도 경운기를 쓰지 않고 소로 농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최원균 할아버지가 소로 논을 경작하고 계신 것이다. 최원균 할아버지는 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분이다. 15년밖에 살지 못하는 소가 4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살면서 할아버지 자신의 나이의 절반가량을 함께했기에 그 관계는 가족은 물론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친구들 중에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에게 강아지가 어떤 존재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가족같이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 강아지도 길게는 15년 산다고 들었는데 조금 살다 죽을 것 같은 강아지가 오래 산다면 그만큼 정도 많이 들것 같다. 하물며 함께 일하며 동거동락해온 소인데 그 소의 존재감이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가 울면 언제라도 달려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소의 상태를 잘 파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 소는 할아버지 자신을 지탱하게 해주고 삶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요소인 것 같다. 할아버지는 소를 바라보며 살고 소는 할아버지를 위해 사는 모습을 영화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늙은 소는 일하지 않고 할아버지 옆에서 라디오만 목에 걸고 있고 발가락 마디가 아파도 무릎꿇고 할아버지 자신이 직접 일하는 모습에서는 할아버지가 소를 생각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부분에서 갑자기 현대 사회의 권력구조가 떠올랐다. 예를 들어 S전자회사는 파릇파릇하고 능력있는 20대의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일을 시키다가 40살쯤 되면 이제 회사에서 그만 나가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가장 높은 가치가 있는 시기에는 채용 해서 쓰겠지만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더 이상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필요없으니 나가달라는 식이다. 만약 최원균 할아버지가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것도 40년씩이나 일도 못하는 늙은 소를 데리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일도 못하는 소지만 매일 여물을 먹여주고 보살펴준다는게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정 때문에 팔지 못하고 데리고 있는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밥값도 않나오는 늙은 소를 팔라고 잔소리 하지만 원하는 값에 팔리지 않자 그냥 돌아오고 만다. 나는 자꾸 최 할아버지의 “안 팔아”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미소가 번진다. 늙은 소를 높은 가격인 500만원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근거에서 그런 가격을 부른건지 최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 5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안 팔았을 것 같다. 최 할아버지라면 500만원이 아닌 1000만원을 준다고 해도 안 팔았을 것이다. 가족이자 영원한 동료인 벗을 어떻게 판단 말인가.
이 영화에서 나오는 소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는게 보통이 아닌 것 같다. 비가 많이 와서 자신의 우리가 망가져 무너졌지만 할아버지 깨울까봐 울지 않는 소의 마음은 사람보다 낫다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런 소를 위해 최원균 할아버지는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사를 짓는다. 이 모습을 통해서 현대 시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우리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자신이 손해보는 것은 하지 않고 수치를 따지고, 계산적이고,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회보다는 소가 최원균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넓은 마음으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시장에서는 소를 일꾼 소가 아닌 식용으로서의 소로 보았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일꾼으로서 당연히 대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식용고기로만 보는 현대인들의 시각이 있을 뿐이었다. 최원균 할아버지가 늙은 소를 놔두고 일할 때 필요한 다른 소를 사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일꾼 소를 찾는 최원균 할아버지를 의아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현대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무조건 현대문명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대인들도 반성이 필요한 부분같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이면적으로 FTA 광우병 시위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소가 끄는 수레에 탄 최 할아버지는 이러한 시위대의 모습을 보고도 남 얘기인 듯 그냥 지나친다. 얼마전에 광우병으로 한동안 미국산, 호주산 하며 소고기에 대해 신경이 곤두섰던 적이 있었다. 서구문명을 개방하지 않고 우리것만 추구하고 우리것을 소중히 했다면 최원균 할아버지처럼 광우병에 대해서는 모르고 편하게 세상을 살았을텐데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알게모르게 조금씩 현대사회의 실상을 고전과 비교해서 보여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서구 문명의 개방을 통해 순수함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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