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 스캔들 을 통해 살펴본 외로운 청소년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친구의 죽음’이란 소재를 중심으로 쓰여진 이 책은 청소년의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조금 유연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는 소설 속의 ‘소설’을 통해 무거운 내용을 환기함과 동시에 추리소설 기법을 도입하여 ‘범인’을 찾아내는데 집중하게끔 한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비보이 스캔들」을 통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유리.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제목 「비보이 스캔들」에 대하여
지난 ‘소치 스캔들’로 인한 말들이 아직까지 시끄러운 것처럼, 스캔들은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좋지 않은 의미를 내포한다. 책 제목에 있는 비보이, 소설 중심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프린스 영후이다. 왜 「비보이 스캔들」이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제목을 내세웠을까?
소설 속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죽은 유리, 유리의 친한 친구들인 지희와 혜수, 준영이와 영후, 그리고 선생님들. 작가는 모두의 프린스인 영후를 비보이로 설정하여 「비보이 스캔들」 이라는 제목을 내세웠다. 비보잉를 하는 소년에게 어울릴만한, 비보잉을 하는 소년은 왠지 스캔들을 몰고 다닐 것 같다는 편견을 그대로 반영 한 걸까? 책을 읽다보면 유리의 죽음을 둘러싸고 영후가 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찮은 소문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계속해서 소문을 퍼뜨릴 만큼 영후는 나쁜 아이였을까? 아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영후가 따듯한 아이이며 똑똑한 아이임을 알게 된다. 영후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사실 유리의 소설 속 프린스의 등장보다 바로 ‘영후가 비보잉을 한다는 사실’ 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생각이 곧고 똑똑한 영후를 비보잉을 하는 자유분방한 아이. 그래서 친구들의 선망을 받지만 선생님들의 관심 밖에 있는 아이로 나타내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영후의 편이 되기를,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아이를 ‘비보이’ 라는 편견 없기 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친구가 죽었다. 그 친구의 소설 속 주인공인 프린스가 있다. 그는 비보잉을 하는 친구다. 비보이를 하는 남자애와 자살한 여자애. 그들을 성폭행으로 묶는 일은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어색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편견이다. 작가는 스캔들과 어울릴만한 인물을 정면으로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가진 편견을 깨고자 하였고 편견으로 얼룩진 소문을 ‘스캔들’ 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다시 한 번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기를 권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비보잉을 하는 영후한테 바치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독특한 추리 기법 - 한명의 가해자를 찾아서.
유리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의 시작은 다소 무겁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독자는 유리의 죽음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유리를 죽게 만든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유리의 이상한 행동 그리고 죽음. 그 죽음으로부터 사람들은 유리가 죽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나름의 소문으로 짐작하게 한다. 성폭행을 당했다더라. 성적이 나빠서 그랬다 더라. 등 여느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은 소문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퍼져나간다. 소설을 읽게 되면 많은 것을 궁금하게 여기게 된다. 크게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누가 행운의 편지를 쓰고 있는가? 유리는 누구 때문에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유리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큰 축은 유리가 자살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유리의 프린스와 맞추어 나간다는 점이다. 독자는 유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레 짐작을 하게 되고 반전을 통해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추리소설의 법칙이 아닌가?
하지만 이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추리소설처럼 결국 범인은 누구였다. 범행 동기는 이것이었다. 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유리의 죽음에서 누구 한 사람을 가해자라고 규정짓지 않는다. 영후의 대사에서도 느껴지지만 ‘우리 모두가 가해자 이며 피해자’ 라는 걸 느끼게 된다. 여기서의 ‘우리’는 유리의 부모님이 될 수 있고 유리의 선생님들이 될 수 있으며 유리의 가장 친한 측근인 친구들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유리가 힘들 때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가해자가 된 것이다. 동시에 그 아이를 잃고 상실감과 슬픔에 젖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작가는 자살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에 의한, 한 가지 사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합적이며 복합적인 이유 속에 기댈 한 곳이 없어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리만큼 어려운 일을 겪는 친구는 결코 적지 않다. 이혼, 경제적인 문제, 성적, 등 세상에는 청소년들이 괴롭다고 할 만한 많은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겪는다고 모든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진 않는다. 그들에게는 격려와 힘이 될 수 있는 가족과 친구와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과연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과연 힘들고 지친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따로 살펴보아야할 일이다. 요즘에는 청소년들이 입시라는 문 턱 앞에서 많은 고비와 많은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자신들의 말을 꾹 삼키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들에게 어떤 역할이 되 주어야하는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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