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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세기 진화주의(루이스 모건)
-진화주의의 학문적 배경
중세의 백과전서파(encyclopedists:프랑스에서 백과전서의 집필과 간행에 참여한 계몽사상가 집단. 이성을 앞세우고 근대적인 지식과 사고방식으로 당시 사람들을 계몽하는 한편 교회와 절대왕정의 권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됨)는 위계에 따라 우주를 분류하였다. 세상의 질서가 정해져 있다고 믿었으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결합시키는 거대한 존재의 사슬에 구현된 원리에 따라 그 질서를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용어는 18세기까지 사용되었으며 근대적인 진화론은 그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진화주의와 거대한 존재의 사슬의 차이점
첫째, 진화의 개념은 공간적 시간적 측면을 가진다. 즉 사물은 시간을 통해 변하거나 진화한다. 둘째 거대한 존재의 사슬은 종들이 고정되어 있다는 고전적인 개념에 근거를 두는데 비해, 생물학적 형태의 진화론은 종들이 항시 변한다는 정반대의 개념에 기초한다. 즉 낮은 수준의 형태는 더 높은 수준의 형태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진화주의
진화주의는 기본적으로 단선진화론, 보편진화론, 다선진화론, 신다윈주의라는 네가지 진화론적 사고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9세기 진화주의는 단선진화론적 진화주의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단선적 진화론(unilinear evolutionism)이란 하나의 지배적인 진화의 계보가 존재한다는 관념으로 모든 사회가 동일한 단계들을 거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따라 진보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느리게 발달하는 사회가 있고 빨리 진보하는 사회가 존재하게 되어 느리게 진보하는 사회는 빨리 진보하는 사회에 비해 ‘낮은’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여기에서 진화, 진보가 무엇인가에 대해 단선진화론자들은 물질문화, 생계수단, 친족조직, 종교적 믿음 등을 강조했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은 상호관련이 있으므로 생계수단의 진화는 친족조직, 종교적 신념과 실천 등의 진화를 야기한다고 믿었다.
-루이스 모건
1818년에 태어난 모건은 서부 뉴욕의 변방에서 성장하여 명백한 운명(1845년 오설리번이 주장한 것으로 미국영토 확장의 정책적 논거로 이용됨), 경제적 팽창과 몰락, 미국 시민전쟁을 배경으로 일생을 살았다. 모건은 이로쿼이(Iroquois) 부족연맹의 하나인 세네카 족과의 개인적 직업적 유대로 인해 민족지에 빠지게 된다. 또한 캔자스와 네브래스카의 아메리카 토착집단(1859~60), 미주리 북부(1862), 아메리카 남서부(1878)도 연구했는데, 비록 장기간의 답사는 아니었지만 매우 집약적인 현지조사를 포함하였다. 이렇듯 19세기 당시의 진화론자들이 인류학 현지조사의 변화무쌍함이나 살아 있는 사람들과의 복잡한 상호작용과는 담을 쌓은 채 도서관 연구에 의존해 결론을 내려 많은 비난을 받은 것과는 달리 모건은 현장 관찰과 통문화적 자료를 종합하여 위대한 인류학적 정보를 편찬해냈다. 모건은 민족지적 자료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자료를 하나의 진화론적 틀 안에서 분석했을 따름이다.
*이로쿼이 부족연맹
1840년 후반에 모건은 본격적으로 이로쿼이 연구에 파묻히게 된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민족지에 바치면서 변호사 활동에 지장이 생기자 지금까지의 이로쿼이 조사 내용을 정리하여 6개월 만에 『이로쿼이 부족연맹』을 완성하게 된다. 『이로쿼이 부족연맹』은 이로쿼이 족의 종교, 가내 건축, 정부와 사회조직, 물질문화, 언어, 지명에 대한 모건의 연구를 요약한 것으로 세상에 처음 나온 인디언 부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역사학자인 프랜시스 파크먼은 모건은 다른 부족에도 공통적인 것을 이로쿼이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간주해 이로쿼이의 독자성을 과장했다고 주장하였다. 파크먼의 비판은 경청할 만하다. 이 시점까지 모건의 인류학 지식은 깊이는 있었지만 편협했다.
*모건의 친족 체계에 대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