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분단과 내 삶 속의 분단 문제 남북한 분단 내 삶 분단 문제 남북한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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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남북한의 분단과 내 삶 속의 분단 문제
나와 같은 젊은 학생들에게 분단이나 통일은 그저 별 느낌 없는 단어일 뿐이다. 우리는 분단이 고착화되어 이제는 분단되어있는 현실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분위기의 사회에서 자라나서 살고 있으며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왜 굳이 통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한다. 우리세대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불러보지 못했고, ‘잊지 말자 6.25’ 따위의 반공 포스터도 그려본 적이 없다. 풍족한 가정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자란 우리에게 북한과 북한주민들은 그저 휴전선 위의 북쪽나라의 사람들일 뿐이며, 민족이라든지 염원이라든지 하는 말은 촌스럽게 들린다. 물론 통일은 언젠가는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 하지만 단지 그렇게 배워왔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 막상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면 대부분 ‘이대로(분단 된 채)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거나 ‘우리가 북쪽 사람들 다 먹여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경계한다. 냉정하게, 진지하게 통일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먼 훗날 언젠가 우리의 후손들이 이뤄야 할 과제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분단이나 통일은 그저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는 이산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뜬구름 같은 소리가 아니다. 분단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비집고 들어와 있으며 우리 삶의 실로 너무나 많은 부분을 규정짓고 있다. 내가 맞닥뜨린 문제나 내가 겪는 수많은 일들의 상당 부분에 분단이라는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분단은 반공이라는 이념으로 무장한 독재정권을 등장하게 하였고, 또한 그 독재정권은 이 사회와 직장과 학교와 가족을 남과 북의 체제경쟁의 미친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다. 이 나라는 병영국가가 되었다. 어떠한 진보적 목소리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 사회는 그 자체로 군대였다. 민주화 이후 이러한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분단의 잔재는 직장에, 학교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화는 되었지만 휴전선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짧고 아직 경험도 많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분단이 내 삶속에 영향을 미쳤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학창시절에 대해 그다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등학교시절 3년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시절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된,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풍요로운 사회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더더구나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부장의 존재 없이, 권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는, 학교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그동안 겪어온 현실과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교과서에서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국가의 기강을 단속하기 위해 국민들의 머리를 나라가 단속하고 깎았다는 얘기를 읽으며 코웃음을 쳤다. 장발단속이라는 것은 부모님한테 어렴풋이 들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사회는 민주화 되었지만, 그러나 학교는 그대로였다. 아침마다 우리는 교문을 통과하면서 무서운 학생주임 선생님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머리는 단정한지, 명찰은 달았는지, 규정에 어긋나는 색깔의 외투는 입지 않았는지, 규정에 맞는 양말을 신었는지, 가방을 맸는지, 슬리퍼는 신지 않았는지, 무서운 눈매로 우리를 감시하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앞을 지나갈 때 마다 우리는 금속 탐지기를 통과하는 테러범이 된 기분이었다. 한 가지라도 해당사항이 있는 학생은 운동장돌기, 앉았다 일어났다 등의 얼차려를 받고 몽둥이찜질을 받기도 했다. 운동장은 사실상 연병장이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두발규정이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집 앞 5분 거리에 고등학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코 부모님 몰래 고등학교 원서 지망 순서를 바꿔 내가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에 진학했다. 거리가 가까운 고등학교는 지긋지긋한 남자고등학교였고, 3 년 동안 머리를 빡빡 깎고 다녀야 했으며 교복은 80년대 스타일의 초록색 계열의 상상도 못할 만큼 촌스러운 소위 ‘메뚜기’ 교복이었고, 또한 학풍이 굉장히 엄격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창 사춘기였던 나는 연애도 하고 싶었고 머리를 마음껏 기르며 멋도 부려보고 싶었다.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한 나는 들뜬 기분으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은 심상치 않은 분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해야 하는 국민의례로 시작한 첫 운동장 조회 시간에 그분이 하신 말은 우리의 목표는 지역의 명문고인 S고등학교처럼 되는 것이며, 우리도 그러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옥같은 춸권통치(?)가 시작되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온 우리를 길들이고 사람 만든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은 우리를 폭력과 공포로 다루기 시작했다. 야간자율학습. 소위 ‘야자’는 고통 그 자체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10시에 밤하늘을 보며 집에 돌아온 첫날, 나는 그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학생 모두가 밤 10시까지 잡혀 있었다. 만화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떠들거나 학습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은 그 자리에서 끌려가서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주걱에서 당구큐대, 목검, 빗자루, 빨래방망이등 맞아본 매의 종류는 천차만별이었다. 아니 차라리 매로 맞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 학년의 군기반장인 무서운 선생님이 자율학습 감독을 맡은 날이었다. 하루는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그 현장을 선생님에게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발각되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귀싸대기’를 각각 두 대씩 맞고 한 시간여 동안 ‘조인트 까이고’ 뒤통수를 맞아가며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다. 친구와 나는 들리지 않는 한쪽 귀를 어루만지며 하교했고 그날 밤 잠자리에서 나는 모욕감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점차 삐뚤어졌고 학교에 대해 불만을 가졌고, 학교를 넘어 온갖 사회의 모순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다. 나는 어느새 진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분단되어 있는, 그래서 모순된 주변의 현실들이 역설적으로 나를 좌경화 시켰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분단이 나로 하여금 진보적인 의식을 갖게 하고 성공회대학교에 오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도 분단은 내 주변 모든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군대식 선후배 위계질서와 심지어 폭력 또한 진보의 대학이라는 이 성공회대학교에서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일정한 나이가 된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에 다녀와야 하는 현실이, 사회 전체의 의식과 문화를 병영화 시켰던 독재정권의 망령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올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 내 삶속에서 마주친 분단 문제 중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 이 젊은 나이에 나는 충성하지도 않는 국가를 위해 내 젊음을 희생해야 한다. 우습지만 사실 더 억울하고 슬픈 것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창 연애하고 있는 내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나에게 동족에게 총을 겨누라고 강요할 수 없다. 아니, 있다. 분단된 국토가 현실을 그렇게 만든다.
분단문제는 우리 같은 젊은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집어 삼키고 있는 현상이다. 분단이 우리의 삶과 별 관계가 없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정치가 우리의 삶과 별 관계가 없다는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분단과 정치 모두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 삶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규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단은 꼭 비 전향 장기수나 이산가족들 뿐 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학교, 직장, 사회 그리고 인생의 수많은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