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2000년대 남북관계 : 남북 화해 및 협력 발전기
(1) 1990~2000년대 남북관계에 영향을 준 주요사건
시기
남한
북한
국제적 영향
1992.2.19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3.2.
중앙인민위원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결정
1994. 6. 28
남북정상(김영삼대통령-김일성주석) 회담 합의
1994. 7. 8
김일성 사망
1995. 3. 9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에 관한 협정
1998. 2.25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남북 기본 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수 교환 제의 및 대북 3원칙 발표
1998. 6. 16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방북
-민간인 최초 판문점 통과
1998. 8. 31
북한 미사일 발사
1999. 6. 15
서해교전
2000. 3. 10
김대중 대통령, 대북 경협지원 확대 내용의 베를린 선언 발표
2000. 5. 24
[평양 학생 소년 예술단] 서울 공연 - 평양 어린이들의 최초 서울 방문
2000. 6. 13
남북 정상 회담
2000.8. 15 - 8.18
남북 이산가족 상호 방문
2000. 9. 15
시드니 올림픽 남북선수단 동시입장과 동시 응원
2000.12.10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2001.11.09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
2001.02
제3차 이산가족 상봉
2002.04,09
제4,5차 이산가족 상봉
2003.02,07,08
제6,7,8차 이산가족상봉
6자회담
2006. 10. 09
북한 핵실험
(2) 진전상황과 한계점
① 진전상황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2년 2월 19일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남북공동성명 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며 합의하였다.
-[남북정상회담 합의]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취임사와 1994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날 용의가 있음을 밝혀 정상회담 추진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한편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한 후 김영삼 대통령을 면담(94. 6. 18)한 자리에서 "김일성이 김영삼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정상회담에 호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한반도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4년 6월 20일 이영덕 국무총리 명의로 북한 강성산 정무원 총리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절차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부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예비접촉을 6월 28일 판문점에서 가질 것을 제의하였다.
북한의 NPT탈퇴와 미국의 북한 공격설로 인해 최악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카터의 방북 및 김일성과의 회담으로 인해 돌파구가 열린 시점이었다. 전격적인 정상회담 합의와 그에 대한 예비접촉으로 인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갑작스런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통일소 500마리와 함께 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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