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누드의 시작
누드(nude)는 나체(naked)와는 구별되는 단어로 벌거벗은 모양이나 사람을 의미하며, 그 의미 속에는 예술적, 외래적 뉘앙스나 관념이 개입되어 있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의식은 원시 동굴벽화에서도 나타나듯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특히 그리스 시대에는 신체와 정신이 완전한 이상적인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 인체비례를 수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러다가 중세시대에 와서는 누드화를 금지시켰고, 르네상스 때에 와서 다시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 누드의 시초로 기록된 것은 김관호 해질녘(1916년)이다. 이 작품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전(文展)에서는 특선에 올랐으나 당시 우리나라의 신문에는 사진조차 게재되지 못했다. 해질녘은 현재 일본 도쿄대에 소장되어 있다.
마광수에서 장정일로 이어진 문학에서의 성적 자유운동이 최근에는 미술에서 김인규교사의 누드미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옷을 벗은 부부의 몸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것에 대한 시민단체, 검찰, 학교의 보수적 대응은 일상적 억압의 소재지가 어디인가를 환기시키는 데에 프랑스 68혁명 때의 나체시위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비디오 캠코더의 대중적 보급, 인터넷을 통한 성적 표현물들의 대규모 유통, 사이버 섹스 등 성적 교류의 새로운 방식들의 대두는 지금까지의 성적 관념을 균열시키는 데 인공피임의 등장보다 더 큰 충격을 가했다.
2. 이전과 현재의 누드에 대한 인식차이
오나가나 누드 얘기로 시끌벅적하다.
로또에 이은 누드 광풍이라고나 할까.
배우 권민중의 누드 사진 및 동영상이 모바일과 인터넷에 서비스 된지 한 달도 안돼 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하는가 하면, 인기연예인 치고 누드 촬영 제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 다고 하고 실제 누구누구도 촬영에 들어갔다고 야단이다.
누드집이 공개적인 화제로 등장한 건 1991년 일본 모델 미야자와 리 에가 "산타페"를 내놨을 때부터. 산타페는 논란 끝에 예술작품으로 인정되면서 국내에도 판매됐고,일본에선 이른바 "헤어누드"를 해금시켰다.
국내에선 가수 유연실을 필두로 모델 이승희와 탤런트 서갑숙 등이 누드집을 냈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글쎄"에 가까웠다.
2000년 김희선의 세미누드 화보집 문제가 터졌을 때만 해도 큰일난 듯하던 분위기는 그러나 탤런트 정양 성현아 등이 잇달아 자신들의 누드를 공개하면서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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