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

 1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1
 2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2
 3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3
 4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4
 5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5
 6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설교] 창세기 39장 1-23절 _ 아직도 꿈꾸십니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설교문 작성 과제
성경 : 창세기 39장 1-23절
제목 : 아직도 꿈꾸십니까?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는 무엇일까요? 실수는 나쁜 것이지만 좋은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수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궁극적으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실수를 저질러 놓고 반성하지 않거나 되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교훈이나 깨달음은커녕 범사가 잘못되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오늘 저는 여러분과 이 ‘실수’에 대해 나눠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저를 통해 반드시 은혜 받으시고 돌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옛날, 그러니까 10년 전쯤일까요. 제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그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따뜻했고요,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여 세상을 바라보면 그저 안타깝고 기도하게 되는 마음들로 가득했던 성령 충만한 시절임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어 변해져가는 제 모습은, 저보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소명도 받고 사명대로 살고자 다짐하는 천국과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들, 아버지, 어머니, 누나는 예수를 알지 못했고, 아버지는 택시 일에, 어머니는 식당일에, 누나는 회사 일에 치이면서 고달프게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힘겹게 사는 모습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보기에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제 가족들이 안타까웠을 뿐입니다.
하루는 제가 TV를 보고 계시던 아버지께 이렇게 어쭈었습니다. “아버지, 교회... 다시 교회에.. 나가실 생각 없으세요?” 아버지는 제게 대답하시기를, “교회? 아빠도 교회를 청년 때까지 다녔었지.. 그런데 지금은 갈 시간이 없네.” 그리고 저는, “그럼 잘 아시겠네요. 다시 다니시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 세상사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다 맡기는 거예요. 그럼 주님이 다 인도하시고 다 해주실 거예요!” 그리고는 약 5초쯤 침묵이 흘렀을까요. 내심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을 때 아버지는 다시 입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순모야,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을 해서 그 목표를 이루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게 인간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미가 있는 삶이지. 다들 그렇게 살지 않니? 그렇지?” 꽤 설득력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저마다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힘껏 달려가다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단련되며, 그러한 모습을 아름답고 위대한,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진정한 우리네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성경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며 꿈 덕에 아니, 그 꿈 때문에 그의 일평생을 온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죽했으면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책에서 요셉을 ‘꿈쟁이 요셉’이라고 소개할까요. 창세기 전체 중 마지막 부분에 무려 열네 장이 이 요셉을 소개하며, 특히 오늘 39장에서 요셉이 겪는 고난과 시련의 이야기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은혜와 형통함을 베푸실 때에는 도대체 어떠한 방법과 길로서 행하시는지 보여줍니다.
이번 한 주간 저는 이 본문을 가지고 시름했습니다. 이 본문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위한 시름이었습니다. 너무도 흔한 요셉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 분명 메시지가 있구나. 내 입술을 통해 선포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지금 꼭 들어야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메시지가 있구나!’ 성경을 읽고 또 읽는 내내 이 애끓는 마음은 식지 않았습니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1절에서 6절은 요셉이 형들로부터 팔려 간 곳에서 우연치 않게 보디발 장군의 눈에 띄어 그의 집에 가정 총무가 되고, 요셉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형통이 흐르며 요셉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치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이구나. 그리고 21절부터 23절에도 이 형통은 여전 하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7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은 이상하게도 형통한 요셉에게는 걸맞지 않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수도 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 요셉같이 형통한 자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질까? 더럽고 추악하고 음란하고 저질스러운 이 상황은 도무지 요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데, 왜 이러한 일들을 하필 이 곳에 배치하셔서 나로 하여금 성경을 여러 번 읽게 하시는 걸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처럼) 손짓합니다. 바라보고 이리로 오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었지만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동침하기를 청하니’의 원어적 의미는 ‘나와 동침해라’라는 명령어입니다. ‘만약 이 명령을 어기면 너는 죽을 수도 있어’ 보디발의 아내는 지금 단순하게 손짓하며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포박하고 악하고 음란하며 독하고 무서운 상황을 만들어 요셉을 해하려는 사탄의 계획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섭고 섬뜩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이 여자는 가만히 있는 요셉을 유혹하는 것일까요? 왜 이 여자는 충실히 일하고 있는 요셉을 해하려는 것일까요?
하지만 요셉은 당돌합니다. 8절에 ‘요셉이 거절하며’의 원어적 의미는 ‘그 즉시’, 즉 이 여자가 말하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했음을, 게다가 당신과 내가 절대로 동침하지 말아야 하는 그 이유를 감히 주인의 아내를 향해 떳떳하고 분명하게 설명까지 합니다. 대단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요셉이 보기에 지금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악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대단한 것은 날마다 유혹하는 이 여자의 달콤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초지일관 그녀를 보지도, 듣지도, 함께 있지도 아니함으로 보디발에게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는 더러운 행동을 범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요셉은 시험과 유혹을 이겨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