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기음교’ 기묘(奇妙)한 솜씨와 지나친 기예(技藝).
에 나타난 수신사 김기수(金綺秀)의 의식
차 례
1. 기본사항 2. 기기음교에 나타난 수신사 김기수의 의식
1.1 지은이 2.1. 김기수를 수신에 국한시킨 성리학적 사고관
1.2 일동기유 2.2. 수신사 김기수에게 영향을 준 당시 정국고찰
2.3. 김기수가 언급한 기기음교와 결론
1. 기본사항
1.1 지은이
김기수(金綺秀)
1832(순조 32)∼?.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지(季芝), 호는 창산(蒼山)으로 김준연(金駿淵)의 아들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울 출신이다.
고종 12년(1875) 헤이그만국평화회의 재임 중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 응교 조선 시대 관직. 홍문관(弘文館) · 예문관(藝文館)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품계는 정4품, 정원은 각 1인이었다. 예문관의 응교는 홍문관의 직제학(直提學)으로부터 교리(校理)까지의 관원 중에서 뽑아 겸임시켰다.
가 되었다. 이듬해 병자조약 체결 후 예조 참의 조선 시대에, 육조(六曹)에 딸린 정삼품 벼슬
에 올라 근대 대일교섭(對日交涉)의 첫 사절인 수신사(修信使)가 되어 1876년 2월 22일 수신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을 다녀온 후, 체일(滯日) 중에 보고 들은 바를 왕에게 복명별단(復命別單) 김기수, 일동기유, 『국역 해행총재』10, 이재호 역, 민족문화추진회, 1982, p.507~515 에 부록되어 있음.
으로 올린 외에 따로 「일동기유(日東記遊)」와 「수신사일기(修信使日記) 1876년 5월 8일부터 6월 1일까지와 동년 11월 10일부터 18일까지의 일본에서의 일기로 구성.
」를 저술함으로써 정계(政界) 요로(要路)의 인사들에게 일본(日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게하고 개화에 관심을 갖게 했으며 뒤에 신사유람단(紳士遊覽斷) 조선 후기 1881년(고종 18) 일본에 파견한 시찰단.
이 파견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877년 곡산 군수(谷山郡守)가 되고 이어 덕원 부사와 대사성 조선시대 성균관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정 3 품 당상관직.
, 그리고 1893년 홍주 목사로 있을 때 황간 · 청풍지방의 민란을 다스리기 위한 안핵사 조선 시대 지방에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 일을 조사하기 위하여 파견하던 임시 관직. 일례를 들면 동학농민운동 때는 장흥 부사(長興府使) 이용태(李容泰)를 안핵사에 임명하였다.
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참판 조선 시대 육조에 소속되었던 종2품 관직. 정원은 각 1인씩이며 판서(判書) 다음가는 벼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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