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민중교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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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70-80년대 민중교회운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70-80년대 민중교회운동
◈ 개 요 ◈
1. 여는 말
2. 민중교회운동
(1) 배경
(2) 민중교회 운동
1) 70년대 민중교회 운동
2) 80년대 민중교회 운동
3. 닫는 말
1. 여는 말
우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으로 민중신학을 꼽으며, 다양한 경로로 민중신학을 접한다,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비록 수박겉핥기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지만, 정작 민중신학이 태동하였던 현장인 민중교회운동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하다. 우리 교단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민중교회 운동은 1960년대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적 흐름이 시작된 이래로, 교계 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도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 글을 통해 민중교회 운동의 배경과, 70-80년대의 민중교회 활동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2. 민중교회운동
(1) 배경
민중교회운동의 태동기는 60년대 말 ~ 70년대의 산업화 시기이다. 이는 유신체제로 불리는 장기 독재체제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발전 계획으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이 급격히 증대되는 시기였는데, 이는 민중의 정치, 경제, 사회적 소외와 억압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생명선교연대 20주년 출판위원회 편, 『민중과 함께 생명선교 20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2005), 11.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몰려온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집약적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였으며, 공장 노동자이자 신명교회 성도인 신명자의 글 “하느님! 노동의 기쁨을 간직하고 싶습니다”에 의하면, 당시의 모직물 공장 노동자들은 생산독촉, 원가절감, 품질향상에 시달리면서 하루에 12시간을 맞교대로 노동하였으며, 방직기의 소음으로 인해 만성적인 청각장애에 시달렸고, 혹자는 기계에 신체 일부를 잃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매달 빚에 밀리는 삶을 살았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민중교회운동연합 편, 『바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한국신학연구소, 1992), 168-173을 참고.
이들의 주거지역은 “과밀도시화”(over-urbanization) 농촌에서 밀려들어오는 유휴노동력(놀고있는 노동력)을 흡수할 기반이 없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팽창이 지속되는 것. 이에 대해서는 황홍렬, 『한국민중교회 선교역사(1983-1997)와 민중선교론』 (한들출판사, 2004), 48-49을 참고.
와, “최저생활도시화”(subsistence-urbanization) 이농인들의 삶이 농촌에서의 생활과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열악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 이에 대해서는 황홍렬, 『한국민중교회 선교역사(1983-1997)와 민중선교론』, 48-49을 참고.
의 형태를 띠었다. 과밀도시화와 최저생활도시화 현상은 빈민주거지의 증가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서울의 판자촌 수는 1961년에 84,400동이었는데 1970년에는 187,500동으로 증가했다. 철거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부정권은 8평짜리 시민아파트를 세웠으나, 철거민들은 그 아파트에 입주할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황홍렬, 『한국민중교회 선교역사(1983-1997)와 민중선교론』, 48-49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