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족의 기독교화
1. 고트족
고트족은 동게르만계 부족으로 로마제국을 수백년간 괴롭혔다. 6세기중엽 고트족의 역사가 요르다네스가 기록한 전설에 따르면 원래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에 거주하였으나 베리그 왕을 따라 3척의 배를 타고 발트해 남쪽 해안으로 내려가 그곳에 살던 반달족과 다른 게르만족을 물리치고 정착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 당시 고트족의 특징을 둥근 방패와 짧은 칼, 그리고 왕에 대한 복종이라고 기록 하고 있다. 요르다네스는 또 그 후 고트족이 필리메르 왕을 따라 비수아강 지역에서 남쪽으로 이주했으며 온갖 모험을 다 겪고 흑해에 다다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트족의 이러한 이동은 2세기 후반에 일어났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던(161~180) 로마제국의 다뉴브(도나우)강 쪽 국경을 게르만 일족이 강하게 압박한 것은 고트족이 북쪽에서 밀고 내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트족은 3세기에 끊임없이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지방과 발칸 반도를 침략했고,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270~275)에는 로마인들도 다뉴브(도나우)강 건너편의 다키아(오늘날의 루마니아) 지방을 고트족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다뉴브(도나우)강과 드네스트르 강 사이에서 살던 고트족을 서고트족, 흑해 북안(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 살던 고트족을 동고트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동고트족은 다른 게르만족보다 더 진보된 정치적 조직을 발전시켜, 왕을 정점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고트족은 몇 개의 키비타스(고대로마의 시민권)로 갈라져 통일되지 않았다. 4세기경에는 로마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서로 적대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평화의 시기에는 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트족의 귀족들은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고트족 사람들은 로마의 도로망을 잘 알고 있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 고트족의 기독교화
고트족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기독교화에 대한 자료들은 충분하지 못한 편이다. 로마제국은 역사를 기록하고 그것을 도서관과 고문서 기록 보관소에 보관하였지만, 유럽의 신생 국가들은 글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료들은 수도원에서 발견되어진다. 수도원들에서는 희랍과 로마의 많은 유산들이 보존되었다. 영어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 서기(書記)라 불리는 사람이 바로 목사 또는 성직자였다. 게르만인들은 신탁(神託)으로 사용된 문자(Buch-Stabeu)를 소유하였는데, 그 문자는 비용이 들었으며, 예언자는 오두막(부스)을 의미하는 주문을 글자마다 하나씩 읽고 마술을 행해야 했다.
유럽의 기독교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간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고트족과 반달족
2) 프랑크 왕국
3) 영국민족
4) 동부 게르만족들(바이에른, 아르메니안, 튀링겐과 색슨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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