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갱신운동의 정체 강단 구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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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배갱신운동의 정체 강단 구조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강단”이라는 기독교적인 용어가 과거 중세시대에는 성소 또는 성단소로 불리웠다. 왜냐하면 천주교에서는 구약제사의 연장의 “미사”라는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성찬대를 제단(또는 제대)이라고 불렀고, 또한 제단이 놓여 있어서 사제들이 제사를 드리는 곳을 지성소 또는 성소라고 불렀던 것이다. 회중석과 성소는 낮은 간막이에 의해 분리되었는데, 본래는 그 간막이를 “Cancellus”하고 불렀으나 나중에는 그 용어가 성소 자체에 적용되었다. 다시 말한다면, 성단소라는 용어는 본래 성소와 회중석을 구별시키는 간막이 또는 난간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이 성단소라는 용어는 이중적으로 사용되었다. 즉 회중석과 분리된 동쪽의 성단소 부분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서, 가장 동쪽 끝의 제단이 있는 곳을 지성소라고 하고, 그 보다는 낮고 회중적 보다는 높은 지성소와 성단소 간막이 사이의 부분이 성가대석인데, 대중적 어법에서는 성가대석이 성단소로 불리우지만, 지금은 지성소와 성가대석을 포함한 전체 지역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바리실카 양식의 교회에서는 성단소가 간막이에 의해서 본당과 명백하게 구별되어 있는 반면에 동방교회에서는 성가대석과 본당이 거의 분리되지 않고 합쳐져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후에는 미사의 희생제사설을 거부하고,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적 구분을 부인하였고, 성단소의 개념을 없애기 위해서 성단소 간막이와 성가대석이 제거되었다. 또한 개혁가들에 의해 성찬에 대한 희생제사의 교리가 거부된 것은 제단이 공예배에서 차지할 자리가 없음을 의미했고, 제단은 강대상에 의해 대체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성단소라는 용어 대신에 강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A.회당의 강단 구조
말씀의 예배는 회당에서 그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대상은 성경 낭독을 위해 설치된 연단이 있던 회당에서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강단 구조의 역사를 회당에서부터 시작하여 살펴 보려고 한다. 회당에서는 말씀의 낭독과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었고, 회당의 구조는 성전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어서, 지성소와 성소가 없으며 하나의 커다란 홀로 되어 있어 회당내 전체가 신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며, 다만 중앙에 단이 있어 그 위에 성경을 놓는 상을 비치하여 그것을 둘러 앉아서 회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는 예루살렘을 향해 서서 기도하였다. 회당의 또 다른 특징은 약간 높은 단 모양의 베마인데 강대상이 그 위에 세워졌고, 성경봉독과 설교와 기도는 모두 이곳에서 행해졌다. 성전 예배의 중심이 제물임에 비하여 회당 예배에서는 예배자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도록 말씀의 낭독과 설교가 예배의 중심적 요소가 되었으며, 그런 면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예배는 회당예배의 형식을 모방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또 회당은 기독교 예배당 건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B.고대 수리아 교회의 강단 구조
두 번째 예는 고대 수리아 교회의 예배당 구조인데, 이것은 유대교 회당이 기독교화된 것 같이 보인다. 여기서는 주목할만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겼는데, 하나는 회중의 눈의 촛점이 모아지는 후진에 상이 놓여져서 감독이 이곳에 나아가서 성찬을 거행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향하여 지어지지 않고 동쪽을 향하여 지어져서 세계 사방에서 그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동방에서 재림하실 것을 상징한 것이었다. 툭별히 유대교적인 상징들이 남아 있는 것은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연속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C.로마 바실리카 교회 강단 구조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는 콘스탄틴 황제 시대의 교회 건물인데, 이 건축 양식은 주후324년 콘스탄틴이 로마에서 비잔친으로 수도를 옮긴 때부터 그레고리 교황이 죽은 주후 604년까지 기독교의 영향 아래 형성된 양식으로, 로마나 이탈리아에서는 12세기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바실리카라는 말은 왕국의 뜻을 가진 회당에서 온 것으로써, 본래는 고대 로마나 기독교 이전시대 이탈리아에 있던 커다란 지붕이 덮힌 공공 건물이나 시장이나 재판소나 지붕이 덮힌 보도 및 회당에 적용되었으나, 점차 다소 일정한 형태를 지닌 건물에만 국한되어 사용하게 되었다. “바실리카”라는 칭호가 붙은 건물은 벽으로 둘러 싸여 있는 직사각형의 구조물들이며,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개방된 홀이 있고, 보통 열주에 의해서 구분되고 있는 측랑들이 측면을 싸고 있다 주후313년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 이후 초기 기독교는 로마 공화국시대에 법정과 공회당으로 사용되었던 바실리카를 그들의 예배당으로 채택하였고, 그 후에 예배당을 건축할 때에도 로마의 전통과 기술을 계승하여 바실리카를 기본으로 삼아 기독교의 의식에 알맞도록 변형하였다. 그래서 바실리카 양식이란, “내부 구조는 로마의 법정의 형식을 채택하였고 외관은 그리이스 신전을 모방하여 지은 예배당 형식을 말한다.” 이 형식의 강단 구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감독의 좌석이 회중석이 있는 곳으로부터 제단 뒤로 옮겨졌다는 점인데, 교회가 점차 제도화 되고 계급화 되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바실리카식 구조에서 두 번째로 특기할만한 변화는 베마를 변형시킨 것으로써, 법궤는 사라졌으며 약간 높은 단도 없어졌고, 베마는 하급 성직자들이 성경봉독자들과 성가대와 함게 서 있는 자리로 변하였고, 또한 성경 낭독대가 양쪽에 하나씩 새로 세워졌으며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등대는 큰 촛대 하나로 대치되었다. 바실리카식 예배당의 내부는 사제석과 본당과 측랑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사제석은 반원형의 돌출 부분과 수랑이며 여기에 주교좌와 제단 등이 있는데, 이 사제석과 본당 사이에 간막이가 있으며, 이 사제석은 본당보다 높게하여 본당 쪽으로 돌출되게 하였다. 본당 끝에는 원주 위에 큰 아아치가 있어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하였으며 이 부분을 영광의 문이라고 하였고, 이 아아치뒤에 성가대석이 있고, 성가대석 좌우로 복음서와 서신서를 읽는 낭독대가 있었는데, 성가대석 주변에는 낮은 난간으로 둘레를 구분하고 양측 측면에 성서 낭독대가 하나 내지 둘이 있었다.
D.비잔틴 교회 강단 구조
비잔틴 건축 양식은 콘스탄틴 대제가 주후 330년에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천도하고 동로마제국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어 주후 1453년 콘스탄틴 폴리스가 오스만 터어키족의 침입으로 멸망될 때까지 동로마 여러 지방에 형성된 건축 양식이다. 비잔틴 건축은 4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6세기 유스티니안 황제 때 황금기를 이루었고, 동로마 제국 뿐만 아니라, 발칸 반도, 러시아, 이태리 등으로 보급되었는데, 이 건축 양식의 특징은 평면은 주로 십자형을 이루고 정방형으로 쌓아올린 건물 위에다 도움을 설치하고 여기다가 바실리카 형식을 혼합하여 건축하는 것으로 동방교회의 기본형이 된것이다. 비잔틴 양식의 강단 구조의 특징은 제단을 한 가운데 두었다는 것인데, 이는 “성직자가 설교하고 성례전을 베풀 때 모든 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바실리카와는 달리 성직자와 평신도의 자리의 구별이 없이 교회 전체가 성역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소에 있는 제단을 성상벽으로 막아 버려서 평신도의 접근을 막고, 그 안에서 사제만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을 행하게 되었고, 신자들은 성상벽 밖에서 사제의 지도에 따라 예배하게 되었다. 이 역시 바실리카식 구조와 마찬가지로 성직자를 특별히 구별시킨 것이다. 제단이 있는 지성소를 가리운 벽을 성상벽이라 하는 것은 그 벽에 성자의 상을 그렸기 때문이다.
E.중세 전기의 로마네스크 교회의 강단 구조
로마네스크 건축은 5세기에서 12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로마 예술을 기초로 하여 유럽 전 지역에서 형성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카롤링 왕조시대의 건축을 이어받아, 11-12세기에서 유럽의 넓은 범위에 걸쳐 채택된 건축 양식이다 이 양식은 로마의 건축 기법을 기초로 하여 중세 문화에 적합하도록 발전시킨 건축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배당 평면 구조는 바실리카 평면에서 차츰 라틴 십자가형으로 발전되었으며, 내부 구조는 본당과 수랑이 교차되어 생긴 성가대석 부분이 중심이 되어 내진과 본당으로 구분된다. 성가대석은 한 단 높은 곳에 만들어지고 그 하부에 성자의 유골을 안치한 지하 예배당인 납골당이 설치되었다. 예배의식 상으로는 성가대석이 생겨 지성소와 더불어 내진을 이루면서 담책으로 구획되었고, 제단은 주제단외에 수랑에 자리잡은 측제단을 두게 되었다. 이 구조는 내면의 전체 구조상 제단이 있는 성단소가 예배당의 절반이나 차지함으로 말미암아 평신도는 구경만 하고 돌아갔다. 특히 이 시대부터 조각, 장식이 예배당에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제단, 설교단, 현관, 출입구 등에 부조를 사용하였다.
F.중세 후기의 고딕식 교회의 강단 구조
“고딕”이라는 용어는 이탈리아인이 중세 예술을 북방 민족인 고딕족의 예술이라고 경멸하여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17세기에 건축사 바사리와 크리스토퍼 렌이 고트족 같은 미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는 뜻으로 중세 건축을 비평하기 위하여 붙인 것이었으나, 오늘 날에는 12세기에서 16세기 초까지에 걸친 중세 건축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하게 되었다. 고딕 양식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자연적인 발전을 이루어진 건축 양식으로써 그 차이점은 개구부의 형태가 반원 아아치에서 첨두 아아치로 변환 것과 로마네스크의 수평적 외형에 비하여 하늘을 치솟는 듯한 첨탑의 수직성이 특징이다. 고딕 양식의 평면구조는 바실리카, 로마네스크시대를 답습한 것일 뿐 별로 발전된 것은 없으나 건물의 형태는 라틴 십자가 형의 긴 건물은 두터운 벽에 의해 성단소와 본당으로 구분되며 성단소에는 지성소와 본당으로구분되며 성단소에는 지성소와 성가대석과 성직자의 좌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평신도들은 본당, 측랑, 수랑, 등에서 예배하게 되었다. 중세후기의 고딕 양식의 교회당은 크게 ‘수도원 예배당’, ‘대성당’, ‘교구교회’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수도원 예배당은 수도승들이 기독교의 본질인 청빈과 설교에 귀환하려는 노력에서 택해진 구조로서, 성단소에 성가대석이 있고 중앙에 말씀을 읽는 강단이 있으며, 성가대 동쪽 가장 자리에 수도사들의 자리가 있었다. 대성당은 주교가 주재하는 성당을 가리키는데, 성단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어서 타 부분보다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