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 작가를 선택한 이유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이 작가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느낌을 받았음.
Ⅰ. 서론 ? 작가의 삶
출생-사망1943.11.09~(만주(본명)(이계진(李癸陳))학력성균관대학교 - 불어불문학 학사성균관대학교 대학원프랑스 루앙대학교 - 문학 박사직업문학평론가/비평가, 시인, 수필가,프랑스 작품 번역(?)파리 제7대학 객원교수인하대학교?불어불문학과 교수
Ⅰ. 서론 ? 작품세계 현실주의적 상상력과 조화로운 삶 추구이가림은 본연적인 자연 추구, 강렬한 현실주의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 삶의 질곡을 날카롭게 형상화 한다. 초기시는 조화된 삶의 붕괴와 그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자신의 내면세계와 내부에서 고려해 보려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후에는 그것을 시대와 사회의 보편적 현실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Ⅰ. 서론 ? 작품세계이가림은 조화로운 삶에 대한 그리움을 그리면서도 이미지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언어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두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시작법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빙하기”(1973),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1981), “슬픈 반도”(1989)가 있다.
Ⅰ. 서론 ? 작품세계프랑스 문학에 영향을 받음이가림은 불문학자로서 프랑스 문학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도 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사상가 바슐라르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바로 상상력의 물질성에 대한 자신의 탐색 도정에서 만난 보조자로서 바슐라르의 가치를 인식하고 언어의 정묘한 사용과 언어의 시적 활용에 의한 이미지의 생성 과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Ⅰ. 서론 ? 작가의 작품앞에서 중간에 언급
Ⅱ. 본론?‘게르니카’의 화폭에는 소, 말, 작은 새, 죽은 아이, 울부짖는 여인 등 여러 동물과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특별히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무시무시한 광폭성을 드러내고 있는 수소와 창에 찔린 말이다.?이 수소와 말은 엘뤼아르가 말한 ‘검은 호흡’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도대체 이것들은 어떤 우의적(寓意的)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일까.?하지만, 하나의 그림 앞에서, 그것이 숨기고 있을 법한 알레고리의 구체적 의미를 찾아보려는 일처럼 부질없는 짓은 없다. 지나치게 고지식한 평론가 판 라레아가 “말은 스페인 국가주의를 대표하고, 수소는 인민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해석을 했을 때, 화가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게르니카’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서슴없이 내뱉은 평론가에게 “이 수소는 수소이고, 이 말은 말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단순 명료하지만 해학적인 대답은 과연 피카소다운 것이라 할 만하다.?피카소가 ‘게르니카’에서 묘사한 것은 ‘프랑코의 꿈과 거짓’(1937)이라는 작품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은 직접적이고 희화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피카소 자신도 1945년에 한 인터뷰에서 “수소는 파시즘이
아니고 잔인성과 암흑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통해서 외치고자 한 메시지는 바로 이 ‘잔인성’과 ‘암흑’이라는 말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말이 스페인 국가주의를 가리키고, 수소가 인민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도식적으로 해석해 버린다면 이는 그림을 죽이는 꼴과 같다. <중략>?엘뤼아르가 ‘게르니카의 승리’에서 보여 주고자 한 것도 ‘?[전 인류적인 시야’로 폭력과 전쟁과 죽음과 암흑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참여적 리얼리즘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쟁은 게르니카의 비극을 고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싸움인 것이다.?‘게르니카’의 화폭 속에서 진짜 적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마찬가지로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찾아내기 어렵다. 판 라레아가 인민을 상징하는 것으로 편리하게 해석했던 수소도 피를 흘리면서 보이지 않는 적을 찾는 것처럼 광폭스럽게 그려져 있다.
?엘뤼아르의 시 ‘게르니카의 승리’에는 ‘포화에 견디는 얼굴’, ‘뒤집혀진 죽은 심장’, ‘저마다 자신의 피를 보여 주는’여인들과 아이들 등의 ?[참혹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이 묘사된다.] 이는 피카소가 ‘게르니카’에서 보여 주고자 한 참담한 인간 파괴의 영상에 대한 시적 변용으로서 동일한 전쟁에의 분노를 표하고 있다. <중략>?여기에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의 동일한 신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폭력과 전쟁과 죽음과 암흑에 대항하여 열정적으로 투쟁하는 ?[엘뤼아르와 피카소의 굳건한 예술적 동지애를 확인할 수 있다.]
Ⅱ. 본론글쓴이의 경험갈래 : 예술 비평 성격 : 예시적 제제 : 엘뤼아르의 시와 피카소의 그림 주제 : 엘뤼아르와 피카소의 예술적 동지애 출전 : “미술과 문학의 만남”(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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